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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모 Oct 05. 2023

냠냠냠 오므라이스 - 이모

[이모저모세모] 2022년 10월호



[이모] 냠냠냠 오므라이스



음식 얘기를, 내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10월이 됐고 가을이 왔다. 식욕이 왕성해진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음식에 대한 애정이 없는 나조차도 식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체 나는 입이 짧다. 게다가 위통이 자주 생겨서 빠르게 먹지도, 많이 먹지도 못하기 때문에 적게, 천천히 먹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음식에 대한 애정이 없다. 필수 영양소를 채워주는 알약이 생긴다면 그것만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음식에 관한 생각이 없다.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맛없는 걸 먹는 건 싫어하지만, 그래도 배만 채울 수 있으면 상관없다는 주의다. 먹고 싶은 게 떠올라도 당장 먹진 않는다. 적어두고 언젠가 먹겠다는 생각만 한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난 음식에 관한 생각을 접곤 한다.


하지만 모든 것엔 예외가 있듯이 이런 나를 대식가로 만드는 예외도 있다.



예외 1번, 볶음밥


난 보통 내 밥그릇에 채워진 양 이외에는 더 먹지 않는다. 배불리 먹을 땐 위가 자주 아프니까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내 밥그릇 안에 있는 양만 먹게 됐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 한스델리에 갔을 때 나에게 할당된 음식을 전부 먹고도 친구가 남긴 볶음밥까지 다 먹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볶음밥을 정말 좋아한다.


아마 우리 집의 영향이 클 것이다. 우리 집은 김치볶음밥을 자주 해 먹는다. 옛날엔 아빠가 주말마다 볶음밥을 해주셨고, 요즘에는 평소에도 많이 해 먹는다. 김치가 시어서 더는 반찬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기름을 두른 팬에 김치를 쫑쫑 썰어서 여러 속 재료와 함께 볶다가 밥과 스크램블 계란을 넣어주면 간단한 한 끼가 완성된다. 우리 집 김치볶음밥의 독특한 점이라면 단무지를 넣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거의 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조금만 매워도 ‘쓰읍-하’하고 물 마시기 일쑤인데 단무지를 넣으면 그 매운맛이 좀 사그라든다. 아삭한 식감은 덤이다. 단무지 특유의 신맛 때문에 못 먹는 사람도 김치볶음밥에 넣으면 도전할 만하다.


볶음밥은 볶은 그대로 식탁에 가지고 온다. 그리고 볶음밥을 비빌 때 썼던 주걱으로 각자 자신의 밥그릇에 담아 먹는다. 나는 이렇게 서너 그릇을 먹는다. 내 밥그릇에 채워진 음식 외에 더 먹지 않는다던 사람이 볶음밥을 먹을 땐 예외다.



예외 2번, 엄마의 오므라이스


위에서 만든 볶음밥에 김치와 계란을 빼고 오이, 파프리카, 당근, 약간의 햄을 넣고 볶으면 오므라이스의 속 재료가 완성된다. 계란을 팬에 두른 다음 볶음밥을 넣고 덮어주면 오므라이스가 완성되는데 우리 집 오므라이스는 위아래 모두 계란을 입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렇게 계란 이불을 덮은 오므라이스에는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오므라이스 완성!’에서 느낌표를 담당하고 있는 케첩이다. 집 오므라이스의 묘미는 케첩을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원하는 만큼 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로로 긴 그릇을 가득 채워 만들어진 긴 오므라이스 위에는 주로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고, 남은 볶음밥으로 한 둥근 오므라이스에는 하트나 얼굴 모양을 그린다. 먹을 때 결국 이 모양들은 모두 뭉개지지만, 채소들의 달짝지근함과 케첩의 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음식이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음식은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음식 중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음식은 오므라이스다.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중 가장 빠르게 입속으로 사라지고, 언제,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다. 특히 먹을 때 단 한 번도 위통을 겪지 않은 신비의 음식이며, 가장 많은 양을 먹는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가게의 오므라이스도 엄마의 오므라이스에 견줄 수 없고, 먹으면서도 아쉽고, 늘 그리워할 음식이다. 아마 난 평생 이러지 않을까?



예외 3번, LA갈비


나는 모든 종류의 갈비를 좋아한다. 생일상의 쪽갈비, 고깃집에서 직접 구워 먹는 숯불갈비나 양념 갈비, 볶음밥까지 꼭 먹어줘야 하는 닭갈비 등등을 사랑한다. 이런 하고많은 갈비 중에 명절이나 외갓집 식구가 다 같이 모이면 꼭 먹는 갈비가 있다. 바로 LA갈비다 (LA갈비는 갈비가 썰리는 방향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갓집의 LA갈비는 신문을 잔뜩 깔아놓은 거실에서 가정용 고기 그릴로 굽는다. 그럼 대부분은 신문지 위에 둘러앉아 먹고, 사촌 동생들을 위한 고기는 작은 상에 따로 준비된다. 어른들이 구워주시고 애들은 받아먹는 구조인데 불러도 나오지 않는 사람은 다 식어버린 고기를 마주하곤 한다.


외갓집에는 LA갈비 귀신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나다. 나는 끝까지 먹는다. 어릴 땐 사촌 동생과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성장기 애들을 이길 수가 없다). ‘아직도 먹냐?’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고, 이전에 다른 음식을 먹었더라도 자리를 지킨다.


신기한 건 고기만으론 배가 차지 않는다. 탄수화물을 먹을 땐 금세 배가 불러오는데 고기류는 배가 차지 않는다. 그래서 늘 약간의 반찬과 밥을 함께 챙겨 먹는다. 이번 추석에는 3년 만에 더덕무침을 곁들여 밥과 LA갈비를 즐겼다. 차에서 다른 주전부리를 먹어 배불렀지만 계속 먹었다. 이미 난 길들여졌고, 오랜만에 먹으니 그 감동만 더해질 뿐이었다. 행복한 기억이 또 늘었다.



그 외에도 추억이 담긴 음식들을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나에게 의미 있는 음식들을 더 오래, 추억과 함께 남기기 위해 적어봤다. 역시 식욕의 계절인가 보다. 쓰다 보니 배고파진다. 요즘 들어 무엇보다 맛있는 걸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음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나 보다.




해당 게시글은 2022년에 쓰인 글로,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한 게시글을 브런치에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2023년은 홀수 해를 맞이해 홀수달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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