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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조각글 Mar 27. 2023

나로 인해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5)

사람을 미워한 대가

나는 발작했다. 착한 행동이 커다란 고통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오롯이 느끼며 망연자실했다. 나에게 그렇게 크고 깊은 절망이 내재해 있으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마치 35년 전 어린아이 때로, 국민학교 5학년 짜리 여자아이로 되돌아간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정성을 다해 호의를 베풀었던 상대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억울하고 분하면서도 화를 내지 못했다. 화를 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랐다. 울분을 삭이느라 속이 썩어 들어갔다.


내 상태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심각하게 말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있어요? 도대체 왜 화를 안 내요? 왜 혼자 견뎌요? 그냥 욕하면 되잖아요. 그냥 화를 내요! 소리라도 질러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말이 가슴팍에 딱 걸려서 넘어가질 않았다. 자기 학대를 자기 성찰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자책하는 걸 반성이라고 생각하며 늘 스스로를 다그쳤다.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결국엔 내 탓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화가 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원망과 미움, 억울함이 쌓여 몸에 병이 났다. 누굴 미워할 수 없는데, 미워하니까 몸이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움이 큰데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내가?


누굴 미워한다고 병이 났다는 게 그 증거다. 나는 왜 누굴 마음 놓고 미워하지 못하는 걸까? 못된 사람을 봐도, 이기적인 사람을 봐도, 나에게 가혹하게 구는 사람을 봐도 이해해 버린다. 그렇게 해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착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남들 보기에 착한 것 같아도 내 속은 나만 아는 것이니까. 누구나 그렇듯 내 안에도 원래부터 미움이 있고, 원망이 있고, 불신도 있다. 그러니 착한 아이 어쩌고는 내 얘기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무의식 저 아래로 가두어뒀던 어떤 기억이 불쑥 솟아올랐다. 교실 속 최약체였던 누군가를 이유도 없이 싫어했던 내가. 평생에 딱 한 번, 일그러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그 사건은 한 때 나를 죽였다. 나는 시궁창에 처박혔다. 사는 게 지옥 같았다. 죽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사건이 ‘갑자기’ 떠오르다니. 내가 설마 그 일을 잊고 지내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실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까맣게 잊었다. 아마도, 20대 초반의 질풍노도를 지나면서부터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삶이 살 만해지면서부터 그 사건을 잊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일을 묻어두었기에 삶이 살 만해진 걸 수도 있다.



고3 때였다. 담임은 2주에 한 번씩 좌석을 새로 배정해 주었는데, 월요일에 와서 교실 뒤에 붙은 배정표를 보고 새로운 짝을 확인하고 2주 동안 지내면 되는 것이었다. 고3씩이나 됐는데 아이들이 꼭 어떤 짝을 원해서라기보다는 앞자리 뒷자리 좋은 자리 나쁜 자리가 따로 있으니 공평하게 하느라고 격주로 번거로운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선지 담임은 당사자끼리 서로 합의만 되면 자리를 바꾸어 앉아도 괜찮다고 했다. 6월 모의고사 전후쯤 되던 어느 월요일 새로 배정된 좌석을 보았는데, 내가 별로 같이 앉고 싶지 않은 친구랑 짝이 되었다.


국민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누굴 싫어한다는 표현을 해본 적 없는 내가 그때는 왠지 처음으로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어 울상을 지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A를 붙들고 "나 J랑 짝 됐는데 너무 앉기 싫어. 아, 너무 짜증 나. 너무 싫다... 어떡하지?" 하며 혐오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내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다. 친구가 많았고, 더 이상 소외될 걱정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안전해진 내가, 누군가를 향해 감히 '싫다'는 마음을 품고, 그것을 겉으로 내비치기까지 했다. A는 흔쾌히 말했다. "그럼 나랑 바꿀까? 난 J가 별로 싫지 않아. 괜찮아. 그럼 니가 P랑 앉아." 나는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친구와 자리를 바꾸었다.


J는 약간 모자라는 친구였다. 지금이라면 경계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친구는 아니었고, 오히려 착하고 물정 몰라서 어디 가서 공격당하기 좋은 아이였다. 가깝게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 친구들도 모두 착한 아이들이었다. 말하자면 그 아이는 미움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 '멀쩡한 아이'였다.


나는 이유 없이 한 친구를, 어쩌면 전교에서 가장 약한 친구를 싫어한 것이다. 싫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더 정확한 표현은 '혐오'다. 그가 나에게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와 관계되고 싶지 않은 마음, 그의 무엇이 나에게 묻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A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런데 6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그다음 주가 되고 그다음 주가 되어도 담임이 다시 자리를 바꿔주지 않았다. 고3 담임이니 바쁘기도 했겠고, 자리 바꾸는 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 그랬을 것이다. 곧 방학이니 그냥 앉으라고 했는데, 당시 고3은 여름방학에도 단 일주일 쉬고 매일 학교에 나가 보충수업을 하고 야자를 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9월 모의고사를 볼 때까지도 짝은 다시 바뀌지 않았다. 내 대신 J와 짝이 되어 3개월이 넘는 시간을 보낸 A에게 미안했다. "나 때문에 J랑 앉아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다니... 미안해. 어휴, 담임이 왜 자리를 빨리 안 바꿔주는 거지?"


지금 쓰면서도 화가 난다. 대체 뭐가 그렇게 미안하단 말인가? 어떻게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싫어하고 미워하고 혐오할 수 있단 말인가?


부끄럽지만 그게 내 실체였다. A는 당연히도, 자기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J는 지내보니 그렇게 이상한 애가 아니고 착해서 같이 있으면 즐겁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끝끝내 내가 혐오한 J에게가 아니라 내 소중한 단짝 A에게 미안해했다.




그리고 수능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J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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