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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한 조각글 Mar 28. 2023

나로 인해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6)

J가 죽었고, 나도 죽었다

지금은 그때 내가 J를 멀리하고 싶어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썼듯이 나는 4학년 때쯤 교실 속 가장 약한 고리였던 경계성 장애인 친구와 친하게 지낸 죄로 모욕과 수치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해서 비슷한 느낌이 드는 친구와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또 6학년 때는 나 스스로가 물렁하고 약해빠져서 친구들에게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된 적도 있다. 내가 J를 혐오한 것은, 그러니까 자기혐오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J와 같은 면이 있기 때문에, 연약하고 만만하고 답답한 면이.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는 단단하고 거친 껍데기로 스스로를 감싸고, 특히 고등학교 때는 단 한 번도 인싸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즉 J를 향한 나의 혐오감은 단순한 미움이 아니라, 방어기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최근에 내가 모든 기억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안아주기 시작하면서 재해석한 것일 뿐, 그때는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교통사고였다. 그때 고등학생들은 보통 10시, 늦으면 12시까지 야자를 했는데, J는 12시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학교 앞 도로에서 차에 치였다.


다음 날 조회시간에 담임이 반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J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고, 무사히 깨어나기를 다 같이 기도해 주자고 했다. 교실은 며칠 동안 어수선했지만 때가 때인지라 다들 공부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 며칠을 내가 어떤 상태로 지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며칠이 지났고, 어느 날 아침 담임이 친구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옆 교실에도 그 옆 교실에도 J의 친구들이 있었다. 복도에서도 울고 운동장에서도 울었다. 수업시간에는 자리에 앉아 울고 쉬는 시간에는 모여서 울었다. 특히 J와 아주 친했던 몇몇은 양호실에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분위기를 잡으려 애썼지만,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 수가 없었다. 모두가 우는데 울지 않는 것도 이상했고, 이유 없이 싫어해 놓고 이제 와서 우는 것도 이상했다. 나 혼자 꿈속에 놓인 것 같기도 하고, 모두가 나 빼고 연극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현실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이지만, 그땐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없었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그날 저녁 야자가 시작되었을 때,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하나 둘 학교를 나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A가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나는 가야 할지 가지 말아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거기에 가냐고, 갈 수 없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A는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이해했다. 가서 인사하고 잘 보내주고 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나를 달래며 위로해 주었다. 아마 그때 내 얼굴이 흙빛이었을 것이다.


장례식장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걸어갔다.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로 이미 가득 차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국화꽃을 놓으며 울고, 절을 하며 울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울지를 못했다. 망자를 보내고 돌아 나오면서 J의 부모님과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J의 할머니는 여러 친구들 사이에서 하필이면 내 손을 잡으시고는 우셨다.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J도 너희들처럼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면서.


너무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장면을 유체이탈 상태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마주한 할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게 아니고 할머니가 손을 잡고 우는데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본다. 그때까지도 내게 무슨 정신이 있었던 것 같지가 않다.


내가 J를 혐오했다는 사실은 A밖에 몰랐다. 나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누굴 싫어한다는 티를 내는 성격이 아니었고, 그건 교양인이라면 당연한 행동거지였다. 교실에서 내 실체를 아는 사람은 단짝인 A 뿐이었는데 A는 나를 이해했고 이건 그저 사고일 뿐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니 괜찮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 실체를 아는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슬프게도 그건 바로 나였다. 나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때까지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착각이 깨지면서 고통이 휘감았다. J를 향했던 혐오는 거침없이 나 자신을 향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열아홉의 나는 아직 어렸고, 너무 순수하고 착했다. 사실 내 혐오와 J의 죽음 사이에는 어떤 상관 관계도 없기에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았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때 나는 자신을 지킬 수도 있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벌을 내렸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못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자책하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시간이 가서 수능은 어떻게 보긴 했는데, 20대 초반을 자기혐오 속에서 방황하며 보냈다. 그 방황은 이중으로 분열된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명랑하고 쾌활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나와 혼자 있으면 스스로를 깊이 혐오하고 불신하는 내가 서로를 미워하고 저주했다. 낮에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밤이 되면 혼자 취하고 비틀거렸다. 마침 세기말이었고, 타락할 이유는 너무 많았다. 나는 마음껏 타락했다.


자기혐오의 늪은 무서운 것이다. 이로써 국민학교 시절 나를 미워했던 아이들이 했던 말이 사실이 되었다. 그들 말대로 나는 정말 ‘위선자’였다. 그렇다면 그때도 당할만해서 당한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누가 날 싫어한다고 하면 당연한 것이고, 누가 날 착하다고 하거나 상냥하다고 하면 잘못 본 것이다.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의심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버릇이 이때부터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인생에 딱 한 번 혐오감을 표현했던 대상, 딱 한 번 싫어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우연한 사건 때문에 공포에 빠진 것이다. 절대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혐오하거나 원망하면 안 되는데, 그건 그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죽으면, 내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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