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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Mar 15. 2024

그렇기도 그렇지 않기도

산골 일기

그렇기도 그렇지 않기도

          - 나를 안다는 말들에 대해


"사막에 데려다 놔도 살 사람"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아마도 웬만하고 어지간한 환경에서는 군말 없이 잘 적응하는 듯 보여서 하는 말들일 텐데요.

아니에요. 당최 그런 말 마셔요. 난, 사막에서 버티고 견딜 근력도 없고, 아주 게으르며,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어 사막에 던져두면 며칠 못 가 죽을 거예요.


"인디언"

나를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떠오른다고 합니다.

지혜롭고 차분하고 자연 친화스럽다나요? 

이 또한 아니랍니다. 나는 지혜롭지 않고요.

차분한 게 아니라 쾌활하지 않은 거고요. 자연친화스러운 게 아니라 문명이 자연을 망치는 걸 싫어하는 것뿐이거든요.


"진짜"

머리 모냥이나 옷 입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고,

다른 옷은 낯설어서 입을 엄두가 안 날 뿐이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괴로움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쪼금 아는 것뿐이라 이렇게 사는 것이지 

진짜 기준에 맞춰보면 허점 투성일 겁니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아, 애기 때부터 아픈 곳이 많았지금아픈 곳 많고, 고질 통통(痛痛)이들이 늘 함께 할 때가 많았으니까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움씬도 못할 만큼 널브러지기도 하고, 기절도 잦았고, 의사로부터 무시무시한 경고도 많이 받았기에 아니라고 우길 생각은 없습니다만,

돌이 지나도록 혼자 앉지도 못하던 것이  덩치로 컸고 내가 선택한 길에서는 더디더라도 주저앉지도 포기하지도 되돌아가지도 않았고, 더디지만 통통이들과 이별 중이니까 조만간 이 별명은 거두어 주세요~~


어쨌든, 자본주의 세상에서 필요한 자격 조건은 그 어떤 것도 갖추지 않고(?) 오직 있다면 필요한 건 사야 니까 소비자 자격만 갖추었고, 쓸모라곤 도무지 없고 열정은 사라지고 주름만 늘리면서 늙어가고 있는데요.

늘어가는 주름과 흰 머리카락만큼, 더 많아지고 깊어지는 통증만큼, 지혜도 늘어나좋겠다는 꿈을 키웁니다.


그리고 다행인 건, 때로는 험한 길, 눈물 길, 고생길, 길만은 아니었던 삶의 길에서 힘든 상황이 와도 누굴 크게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갑갑 혀, 뭔 말을 못 허겄어.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니까."


갑갑한 건 맞습니다. 농담이나 에둘러 말하는 건 잘 못 알아듣거든요. ㅜㅜ  그래서 핀잔을 듣곤 합니다.

요즘 말로 예능을 다큐로 받는다나요?

상대방은 가볍게 한 말이라는데 왜 그리 진지하게 들리는지 나도 몰라요.

툭- 던진 말이라는데 심각하게 들리는지 나도 정말 도무지 모르겠어요.


"조심스러워 말을 못 하겠어요. 잘못했다 괜히 지적받고 혼날 것 같아서..., "


괜히 지적질할 것 같고 괜히 혼낼 것처럼 보이는가요? 아녀요, 내가 뭐라고 남을 혼내겠어요. 누굴 지적할 만큼 잘 살지도 않는걸요.


"어려워요. 너무 빈틈이 없어 보여요."


빈 틈 없어 보인다고요? 노! 노! 노! 노!

허점 투성이에  줄 아는 것 없고, 운동신경도 없고, 뛰지는 못하지만 산길 걷는 건 좋아하는, 그저 그렇고 별 볼 일 없는 주름에 흰 머리카락 검버섯 늘어가는 반백살 넘은 평범한 인간인 걸요.


(사람 보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므로) 젊은 벗들이 가끔 '귀엽다'하는데, 건 아마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어떤 행동이 귀여워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보인다는 뜻일 거고요. 정말로 내세울 것 없고, 그릇도 아주 작아 조선간장 종지로 밖에 쓸 수 없을 겁니다.


조선간장 고추장 종지만한 그릇 크기라 담긴 것도 담길 것도 작고 적음에 주제를 알고 분수를 지키려 노력하는.

산골에서 흙 만지며 흙내음 맡으며,

총성 없는 전쟁터 같은 각박하고 팍팍한 도시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의 쉼이 필요하고 흙내음 그리울 이에게 기꺼이 쉼터와  거리를 나누어 주며 무겁고 괴로운 것들 내려놓고 털어놓고 웃음과 평안함을 챙겨담도록 도와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이웃 같은 벗이고 싶은 원(願)을 품은!


어떤 걸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이 많아졌네요. 다 쓰잘데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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