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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푸른 Sep 24. 2023

나만 모르는 계약연애

완연한 가을이 끼쳐든 세상은 하늘은 높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구름만 봐도 기분 좋은 그런 나날이었다.


축제로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들고 우리도 그 속으로 스며들어가 전시도 보고 길거리 음식도 먹고 공연도 보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평범했던 날들처럼 그가 집 앞에 바래다주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에 그에게 장문의 문자를 받게 된다. 내용은 우리가 앞으로 더 만나고 싶은지 헤어지고 싶은지 상의하자는 내용이었다. 일주일간 생각할 시간을 갖고 다시 만나서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하자고 했다.


그때가 그와 만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황당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너무 당황스러워서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몸이 아프기 전에는 전조증상이라도 생기는데 우리의 헤어짐은 어떠한 전조증상이 없었다. 바로 전날까지 스스럼없이 스킨십 하고 놀러 다니다가 뜬금없는 이별준비라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또 있었구나.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서 소개로 그와 만났다. 대화가 잘 통했고 만나면 즐거웠다.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고 취향도 비슷해서 우리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때가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져서  좋은 면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그와 만나던 날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면서 우리가 결혼 적령기 나이 이기도 했고 미래를 보면서 만나야 될 것 같기도 한데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진지하게 앞으로 더 만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을 갖고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때도 당황스러웠지만 그 사람을 좋게 보고 있었고 좋아했던 감정이 더 컸기에 더 만나보기로 했었다. 그래서 그 후에 1년을 더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1년 후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내게 돌아왔다.


마치 보험 만기가 도래되어 재가입해 달라는 안내 메시지처럼 말이다.


내가 미처 몰랐던 계약 연애였었나.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우리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만하자고 했다. 감정소비가 너무 심해서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우리 사이는 딱 그만큼 거기까지였던 거다.


그 사람도 나를 그만큼만 생각했고 그만큼만 좋아했던 거겠지.


더 이상 미련도 생기지 않았고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 했기에 크게 슬프지 않았다.


2년의 연애가 얼굴도 보지 않고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으로 마무리되어 씁쓸했지만 그냥 좋은 경험 했다 치기로 했다.


나는 한 사람에게 쉽게 곁을 내어 주지 않지만 내 사람이 되면 만남에 있어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하자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야 나중에 미련이 생기지 않으니까.




기억의 조각 속에

내 젊은 날의 모습은


한 떨기 꽃잎이

이슬을 머금은 채 붉게 물든 내 인생은


단단히 뿌리내려

올곧게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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