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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 Jun 26. 2016

비둘기싸움

승자를 바라보는 시선


이사 온 빌라에는 유독 비둘기가 많다. 우리 집 고양이에겐 역동적인 사냥감이겠지만 나한테 비둘기는 평화라기 보단 더러움의 상징이인지라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비둘기가 이를 옮긴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피해 다니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친다면, 아마도 비슷한 감정일 터였다. 


어느 날, 나는 맞은편 빌라 옥상에 앉은 비둘기 두 마리를 보았다. 가장 높은 곳에서 두 마리는 자리싸움을 하는 듯 보였다. 권력싸움인 것 같았다. 두 비둘기는 꽤나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목을 쪼거나 날개를 크게 휘저어 위협하는가 하면, 사뿐히 날아올라 뒤에서 기습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것은 소리 없는 싸움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들이 날아왔다. 비둘기 세계에서도 싸움구경은 가장 재미난 구경이라는 말은 통했다. 주변에 있던 비둘기들이 한 번에 날아올라 그 둘을 지켜보았다. 그때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에게 제대로 공격을 가했다. 날카로운 부리로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이 한방으로 승패는 갈렸다. 공격을 받은 비둘기가 그대로 나가떨어져 조금 낮은, 다른 편 빌라 옥상으로 내려앉았다. 승자는 의기양양하게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떨어진 비둘기를 응시했다. 그 순간 나는 놀라운 동물의 세계를 목격했다. 동물의 왕국을 현실에서 마주한 기분이었다. 

구경꾼들이 승자의 양옆으로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멀찌감치 앉아 홀로 싸움을 지켜보던 한 마리가 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새를 알지 못한 나는 그 둘이 정확히 부부관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은 마치 생을 함께하는 동반자와 같았다. 나가떨어진 비둘기는 잠시 그 자리에서 몸을 추슬렀다. 그러고는 자기 곁으로 와준 단 한 마리의 비둘기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긁어주고, 부리를 맞추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새를 알지 못한 나는 고마움의 표식쯤이라 짐작했다. 승자 비둘기는 가장 높은 곳에서 그 둘의 모습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기 곁으로 와준 단 한 마리의 비둘기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긁어주고, 부리를 맞추었다. 



둘은 찰나의 인사를 마치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그 둘은 목덜미의 깃털을 세워 얼굴을 깊게 묻고 잠을 잘 채비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승자와 그 추종자들은 둘을 계속 주시하며 자리를 지켰다.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한 비둘기는 풍채가 당당했다. 날개 짓을 할 때면 여느 비둘기와 다르게 날개 부딪히는 소리를 탁탁, 크게 내었다. 짧은 비행에서도 그는 보란 듯이 날개소리를 내었다. 난 그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어딘지 애처로웠다. 다수의 추종자를 거느렸고, 가장 높은 자리에서 자신의 영역을 전망하는 기쁨을 가졌지만, 여유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여유로운 쪽은 그 둘이었다. 그들은 간혹 승자 비둘기가 경고하는 날개소리를 내며 다가오면 잠깐 놀랄 뿐이었다. 그 외에 시간은 평화 그 자체였다. 비록 낮은 자리였지만, 정오의 햇볕을 피할 수 있었고 이따금씩 서로의 등을 긁어주었다. 맞은편 빌라에선 여전히 승자비둘기가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 있었다. 가장 충성하는 두 비둘기도 양 옆에 함께했다.


그날 이후, 나는 비둘기가 보일 때마다 승자의 자리를 지켜보았다. 창밖으로 날갯짓 소리가 크게 들리면 역시나, 승자 비둘기였다. 승자의 세레모니는 우리 집에선 사냥감이 나타났다는 신호일 뿐이었다. 비둘기의 소리를 듣고 고양이들이 창가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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