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화건 Jul 10. 2024

가슴을 누르는 돌을 내려놓으려고

긴 슬럼프를 벗어나고 싶어서...

"'브런치'에 들어오면 글이 술술 써지지 않을까?" 하는 되지도 않는 착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란 걸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말이죠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했더랬죠. 그렇게 시작은 했는데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감이 안 잡히더군요. 며칠 머리에서 김이 나게 고민을 했죠. 끝이 안 날 것 같던 고민에도 끝은 찾아오더군요. 그렇게 헤매던 어느 날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예전부터 생각했던 걸 시도해 볼까?'

그때까지도 아니 지금도 솔직히 저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여전히 많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게 제가 말하는 걸 꽤나 좋아한다는 거였습니다. 좋아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이따금씩 필요 이상으로 오버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지만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요. 특히 가까운 사람들이 더 했죠. 솔직히 처음에는 모른 척하며 지냈는데, 결국에는 한계가 오더군요.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하던 대로 지냈었는데 생각해 보니 솔직히 고집부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말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하는 걸 고치려고 짧게 하는 연습을 나름 열심히 했는데도 줄이는 건 역시나 쉽지 않았죠. 방법을 찾으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게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았죠. 말하는 걸로 시도하는 게 쉽지 않다면 글을 통해서 바꿔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죠. 나쁘지 않더라고요. 평소 하던 대로 하는 말이나 생각을 글로 옮겨본 후에 다시 핵심만 남기기 위해서 줄이고 또 줄였죠.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죠. '택도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죠.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하나 가지고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길~게 써지더군요. 몇 번을 계속 보면서 볼 때마다 조금이라도 짧게 만들려고 시도했었죠. 역시나 안 되는 건 없더군요. 그렇게 조금씩 짧아져갔죠

처음에는 글 하나 완성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었죠. 사전도 봐야 했고 다른 글들도 확인해 보며 만들다 보니 정말 쉽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느끼는 감정은 정말 남달랐습니다. 하나하나 완성될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은 말로 표현이 안되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강도가 약해지기는 했어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했죠

그렇게 글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군요. 쌓여가는 글의 수를 볼 때마다 확실하게 이거다 할 건 없었지만 그럭저럭 제대로 살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죠. 자신감과 자존감까지 올라가는 건 덤이었고요. 그러더니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몽글몽글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급기야 어느 날 "글들을 모아서 책을 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고야 말았죠. 정말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만나니 기분이 정말 좋더군요. 심장 뛰는 일을 만난다는 건 받고 싶었던 바로 그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아주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제대로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기니 숨도 제대로 쉬어지더군요. 안심이 되면서 편안해졌죠. 정말 좋았습니다


좋은 기분도 며칠 지나니 어쩔 수 없이 약효가 떨어지더군요. 그와 함께 당연히 현타도 왔고요. 기분만 좋다고 해결될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꿈속에서 유유자적 노닐 때가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간에 행동하고 도전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무엇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당황스럽고 고민이 되더군요. 막막해도 무작정 찾아봤죠. 바로 나오더군요

두말이 필요 없이 바로 여기 '브런치'가 눈에 들어왔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도전을 했는데... 부족한 게 많았나 봅니다. 재능도 별로인 데다 정확히 무얼 해야 할지 모르다 보니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제 꿈의 무대가 돼주길 바란 이곳 '브런치'에 겨우 발을 내디딜 수 있었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뿌듯함과 함께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취해 '브런치'를 둘러보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내 것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글도 발행하며 기분 좋게 '브런치' 내에서의 생활을 즐길 수 있었죠. 그 기간이 짧았다는 게 아쉬운 점이지만요. 다른 작가들의 글에 계속 눈이 가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머리가 복잡해졌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속도 역시도 눈에 띄게 늦춰지더니 결국에는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없이 작아진 저 스스로가 안쓰러운데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계속 헤매게 됐죠.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길은 보이지 않고 가슴만 답답하더군요. 그래서 우선 자판에서 손을 떼고 좋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더군요. 바람보다는 속도가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되도록 많이 가지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다' 하는 건 떠오르지 않았지만 마음에 힘이 비축되기 시작하면서 자신감도 아주 조금씩 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척 느렸지만 말이죠. 그래도 돌고 돌아 다시금 글을 쓰고 싶다는 곳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글 쓰는 것과 관련해서는 주로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상황에 따라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선택 장애를 느끼게 할 만큼 많은 대안들 덕분에 며칠간 고민을 해보는 호사를 누린 끝에 우선 마음에 드는 길들은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 길들 위에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워져 보려고요. 뭔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고요. 특히 나 자신에게는 더더욱 얽매이지 않고 편해져보려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죠. 실수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에도 자책이나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슬럼프를 겪으면서 내적으로는 조금 더 단단해진 걸 느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혹여라도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면 금연을 시작하기 전에 불안감과 아쉬움에 잠시 망설일 적에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해 내서 뻔뻔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겁니다. 그 마음으로 담배도 10년 가까이 멀리하고 살았는데 무얼 못하겠어요!

"실패하면 어때요! 다시 시작하면 돼요. 실패했다고 그만두는 게 문제지"


이제는 저 스스로 가슴에 올려놓은 돌덩이를 내려놓을 겁니다. 제가 올려놓았으니 내려놓는 것도 스스로 하는 게 당연한 거니까요

멋진 글을 술술 쓸 거라는 착각에서는 벗어났으니 이제는 나다운 글을 쓰는 것만 남았네요

작가의 이전글 습관의 날개로 훨훨 날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