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려 보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생각합니다

by 하화건

이별에 대해 생각한 이후로 생활에도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변하더군요. 오늘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를 뼈저리게 알게 됐거든요. 매일이 감사해지니 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됐죠

내일을 생각하는 마음도 달라졌어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됐죠. 내일 역시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내일을 귀하게 여기게 되니 애타게 기다려지기까지 하더라고요


생각이 바뀌니 마음도 행동도 바뀌었어요. 먼저 새로운 날을 맞아 눈을 뜰 때면 '오늘 하루가 감사하게 또 주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럽게 고마움을 표현까지 하게 됐죠.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한 날들이 쌓여가니 늘 똑같다고 생각했던 경험들도 특별해지더라고요. 성격까지 조금씩 변했고요. 아니 태도가 변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예전에는 "나는 참을성이 참 부족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루를 감사함으로 시작한 후로는 인내하는 시간도 조금씩 길어지더라고요. 인내의 시간만 길어진 게 아니라 날 선 마음도 차츰 무뎌지더군요. 좀처럼 흥분을 하지 않게 되었고 가끔 흥분할 일이 생기더라도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더라고요. 옛말처럼 가는 말이 고와지니 오는 말도 고와져서 관계에까지도 좋은 영향을 줬죠.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니 마음까지 편해졌어요. 게다가 삶을 돌아볼 여유까지 생기니 새 삶을 얻는 것처럼 정말 좋았죠




이별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최고의 이별은 과연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죠. 그랬더니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답에 도달하더군요. 솔직히 처음부터 죽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다른 답이 없을까 빙빙 돌았어요. 피하고 싶었거든요. 거부감이 들었으니까요. 저 자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에는 맞닥뜨리기로 했어요. 이왕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내 장례식에 내가 직접 가본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죠.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어요. 그러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상이어도 좋은 경험이 되겠더라고요

제 겨드랑이 밑에 숨겨두었던 상상의 날개를 펼치니 곧 공상의 나라를 비행하고 있는 제가 있더군요. 이 경험이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경험까지 선물해 줄 거란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왜냐하면 '어떤 것들과 헤어져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 많은 답을 줄 거 같았거든요


마음이 조급해지네요. 곧장 제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봐야겠어요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막상 닥치니 보니 정신이 없네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연명 치료를 거부했었기에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네요. 마음이 급해집니다

제 감정과는 별개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네요.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했습니다. 우선 제 부고를 알려야 했어요. 연락을 해야 할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전화와 카톡을 돌렸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까지 떨렸어요.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줘서 간신히 연락을 마칠 수 있었네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담당 의사를 만났습니다. 슬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네요


손님들이 오기 쉬운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상조회사에도 연락을 했습니다. 어느샌가 장례지도사가 도착해서 도움을 주네요. 이름 있는 업체로 했더니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가족들이 모여 장례 형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일반장으로 3일 하기로 정했습니다. 손님들이 오기 전에 준비를 마쳐야 하니 정말 바쁘네요. 여러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준비를 하다 보니 정리가 되어 안심이 됩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데 참 생소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절차에 따라 하나하나 진행되니 진짜로 실감이 납니다.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올라오는군요. 이별이 현실로 다가와서인지 어쩔 줄 모르겠네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집니다.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제가 그러고 있네요.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멈춰지지가 않습니다. 슬픔이 심하긴 했나 봅니다. 그래도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좀 진정되네요


문상객들을 맞이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처음엔 당황스럽더라고요. 살며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뿐 아니라 가족들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까지 찾아주니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신 거였어요. 정말 감사하네요


자정이 가까워지자 문상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다가 결국 혼자 남았습니다. 갑자기 옛날 장례식장의 풍경이 떠오르네요. 밤새 왁자지껄하고 정신없었는데, 요즘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죠. 세상도 많이 변했고요. 혼자 덩그러니 앉아 제 영정 사진을 봅니다. 담담하네요. 사느라 참 수고했다 싶어 안쓰럽기도 하고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네요. 미련이 많이 남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마음이 편안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저런 순간이 있었나 싶은 것들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괜한 것들에 욕심부리며 살았던 모습이 떠오를 때는 부끄러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것들인데 말이죠. 다만 살아있는 동안 사람들과 더 잘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드네요




이틀째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른 시간부터 이어졌습니다. 오늘 역시도 제 지인들 뿐 아니라 가족들의 지인들까지 많은 분들이 저의 마지막 길을 환송해 주시려고 오셨어요. 고마운 마음에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잠시라도 저를 생각하고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렇게까지 특별한 경험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저의 시간들에 소중하고 귀한 의미가 더해지니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주네요. 아니 행복을 넘어 감동이었어요


많은 손님들을 맞느라 슬플 짬이 없었어요. 솔직히 혼자 질질 짜고 있는 게 싫어서 더 정신없이 보낸 것도 있지만요. 그리고 저를 아는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며 웃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예전엔 진짜 몰랐네요. 특히 제가 모르거나 잊고 있었던 저 자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값진 시간이었어요


오늘도 시간이 되니 손님들이 돌아가고 조용해졌습니다. 오늘도 조용히 제 영정사진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어요. 나와 이렇게 단둘이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겠죠. 기분이 묘하네요

이걸 내면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겠죠. 남들은 모르는 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대화 중에 약한 어린아이도 다시 만났고, 의욕은 많았는데 방향을 잃어 의기소침해진 젊은애도 또 볼 수 있었어요. 사랑과 꿈을 위해 굴곡진 시간을 보낸 저도 다시 만났고요. 당시에는 그냥 지나쳐서 아쉬웠었는데 해주고 싶던 이야기들을 더 늦기 전에 밀린 숙제를 하듯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위로의 말도 하고, 응원도 하고, 또 공감의 말까지 건넸네요. 이제야 마음속에 남아있던 아쉬움을 훌훌 털어낼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정말 오롯이 저를 위한 시간을 보냈네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시 웅성웅성 시끄러워졌습니다. 아주 이른 시간인데도 발인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네요. 저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가족, 친척, 친구들은 엄숙한 건지 아니면 긴장한 건지 표정들이 다 굳어 있습니다. 하기사 지금 농담하고 웃을 때가 아니긴 하죠. 시간이 되자 저와의 작별 인사를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형식이 그렇게 싫더니만 이 순간만큼은 형식이 주는 만족감 덕에 마음이 편안하네요. 온전히 저를 배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막힘없이 잘 진행이 되어서 제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어요


우선 제가 살던 동네를 들렀습니다. 이걸 노제라고 하죠.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이면도로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동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어요. 입구에서 잠시 멈춰서 제가 마지막으로 인사할 시간을 주네요


다시 길을 나섭니다. 제 육신과의 이별을 위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승화원에 도착했습니다. 모두의 표정이 더 슬퍼 보입니다. 저도 아쉬움과 슬픔에 가슴이 아팠고요. 이 마음도 이 순간이 지나면 느낄 수 없겠죠? 다시 가족, 친척, 친구들이 저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와의 모든 인연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사람들 속에서 마음속 응어리를 모두 털어내듯 오열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저의 장례식은 마무리가 됩니다


솔직히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등 여러 감정이 남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고요하고 평온함만 느껴지네요. 특히 부질없는 감정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렇게 담담한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숙연해지네요. 걱정과는 달리 감정이 격앙되지도 않았어요.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게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내 수긍이 되더군요. 부인한다고 바뀌는 게 없고 거부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번 상상으로 얻은 큰 깨달음이 있습니다. 바로 '공수래공수거'인데요. 물질적인 것 중 어느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걸 상상 속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죠. 감정도 별반 다르지 않더군요. 물론 고마운 마음이야 그렇다 쳐도 악감정은 지니고 있을 이유도 필요도 없더라고요. 가지고 있어 봐야 나만 손해니까요




저의 장례식을 치러 보니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불필요한 게 꽤 많이 보이더군요.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정신적인 것 그리고 육체적인 것까지 모든 부분에서요. 놀랍게도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까지 거의 대부분이 불필요한 것에 해당되더군요. 특히 저장이나 축적은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죠

그리고 '무소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어요. '무소유'개념에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딱 그만큼만 필요하더라고요. 법정스님의 혜안에 감동과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번 경험을 통해 새삼 실감했어요. 물론 상상 속의 경험이지만요. 권투를 연습할 때 쉐도우 복싱이라는 걸 하는데, 이와 비슷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특히 이번 경험을 통해 저 자신이 부질없는 것들에 얼마나 욕심을 부리는지 새삼 알게 됐어요. 만족보다 결핍을 더 많이 느껴서 그런 걸까요?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까지 욕심을 많이 부리더라고요. 당황스러웠죠


그러면서 정작 돈과 관련되서는 거짓말을 하며 살았더라고요. 고결한 척하며 삶의 목적이 이상 실현이라 떠벌리면서 정작 삶의 유지에 필요한 돈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살았던 거죠. 솔직히 지금도 여전히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요. 저 자신도 속이며 사는 거죠

아쉽기도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 한 편으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며칠간의 제 장례식을 잘 마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조금은 더 또렷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경험이 제게는 큰 축복이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무얼 할지'와 '무얼 내려놓아야 할지'에 대해 더 또렷이 알게 되었기에 준비를 더 충실히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게 됩니다

이 마음 그대로 이별 준비를 잘해야겠어요.


다음엔 뭘 할까 고민을 다시 시작합니다



*표제의 그림 "이 이미지는 챗GPT를 이용해 생성되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박제된 추억도 정리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