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봐 주는 사람은 누군가요?
지난봄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했다.
매주 주제가 다른데, 어느 날 주제가 ‘나의 뒷모습’이고
제시하는 그림을 보고 쓰는 글쓰기였다.
뒷모습을 떠올리니 생각나는 첫 단어가 “추악”.
이유는 모르겠고 깊은 무의식에서 끌어올려졌겠지 싶었다.
그 날 아침 첫째 딸아이를 깨우며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애정을 부어주었다.
아이는 어제 다 못 끝낸 숙제를 아침에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늘 그렇듯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났을 때 내는 짜증이 들려왔다. 나는 불같은 분노를 드러냈다.
다정함과 분노 사이 시간은 고작 3-4분..
이중적인 내 모습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 몸부림친다. 노력하는데도 늘 반복이다.
그래서 ‘내 뒷모습은 추악하다.’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 것 같다.
아이와는 화해하고 수습했지만 예민하고 불안이 높은 아이가 받을 영향이 늘 걱정이다.
여하튼 이런 상태에서 글쓰기를 했는데,
무의식의 흐름이 그대로 풀어헤쳐진 듯 똥이 등장했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똥 좋아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
공개해봅니다.
뒷모습이라..
앞모습은 꾸며낼 수 있지만 뒷모습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밖에 없잖아.
어느 정도 남을 의식하며 살아온 나에게 뒷모습은 어렵다.
앞모습은 보기 좋은데 뒷모습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이미지가 좋지 않다.
앞에서 남들 보기에 괜찮은 표정 짓느라 힘듦과 슬픔, 무서움, 분노 등이 내 뒤통수와 등에 덕지덕지 묻어 있다. 괜찮은 걸까?
서수연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해본다.
제목 :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
고양이가 늑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너 등에 똥 묻었어.”
늑대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한다.
“응. 알아.”
고양이가 크게 놀라며 말한다.
“얼른 닦아.”
늑대가 어깨를 있는 한 껏 늘어뜨리고 고개는 푹 숙인 채
체념한 듯 대답한다.
“내버려 두어. 그 똥 내 거야.
나도 닦고 싶어서 여러 번 시도했는데 손이 안 닿아.
이제 그만 포기할래 “
고양이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한다.
“내가 닦아줄게. 너도 내 뒤에 뭐 있는지 봐줄래?
나도 더러운 거 묻었으면 닦아줘. ”
늑대는 한결 밝아진 채로 고양이 등을 닦아준다.
고양이는 늑대의 뭉툭하지만 폭신한 앞발의 살이 보드랍고 따뜻했다.
그래. 다 내 거다.
그런데 잘 안 보이고 손도 안 닿는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
누군가 발견해 주고 닦아주고 토닥여주면 되지. 뭐.
나는 고마우니까 다시 또 열심히 사는 거다. 뭐.
"당신의 뒷모습은 어떤가요?"
"뒷모습을 닦아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나는 아이들.
아이들을 통해 내 똥을 본다.
그 똥 닦으려고 무던히 책을 본다.
어쨌든 책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썼을 테니까.
주변에 멘토가 없다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포기도 안 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책이 있다.
그래서 나는 책피는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