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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ug 07. 2023

#009화 @나다 싶으면 달려야 합니까

  “행정실에서 전파합니다. 각 소대 2명씩, 각 소대 2명씩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행정실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각 소대 2명씩, 소대 별 2명씩...”     


  아침을 먹고 난 뒤 평일 오전, 내무반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으면 이런 방송이 심심찮게 울린다. 군대에서의 평일 일과란 거의 훈련, 또는 작업의 연속이다. 훈련이 없는 날은 종일 각종 작업이 기다리고 있고, 작업이 없더라도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소대별로 몇 명씩 방송이 나오면 반드시 가야만 한다. 때로는 모든 중대원이 동원되는 대규모 작업이 있고, 소대별로 업무를 분담해서 진행하는 작업도 있다. 작업의 종류는 다양하다. 제초 작업, 낡은 윤형 철조망 운반 작업, 배수로 보수 작업, 풀 뽑기 작업, 창고 정리 작업, 진지 보수 작업, 겨울엔 끝도 없는 제설 작업 등등. 작업이 없는 날은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라도 거의 매일 무언가를 하고,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게 만드는 곳이다. 군대라는 곳 특성상 잡생각이 많아지면 사고가 나기 때문이라 그런 건지, 군인들은 거의 항상 바쁘다.     


  어쨌든 다양한 작업을 위해 병사들을 차출하기 위해 ‘방송’이라는 시스템이 이용된다. 주로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병사가 전파하는 편인데, 전파가 떨어지기 무섭게 그 내용을 각 내무반 막내 또는 이등병들이 큰 소리로 앵무새처럼 ‘전파’해야 했다. 예를 들어 “소대별 5명씩 목장갑과 야삽(야전삽을 말한다) 챙겨서 연병장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방송이 나오면, 큰 목소리로 “~ 모여주시랍니다!!!” 하고 외치고 뛰어가야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뛰어야만’ 한다는 것. 그 시절 이등병이 걸어간다면 그것은 또 갈굼의 원인이 되었다.     

  “야!! 전파들 안 하냐!!!” 주로 각 내무반에서 군기반장을 맡고 있던 선임들은 최대한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윽박지른다. 그 에너지로 같이 전파를 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방송을 듣고 갈굼을 받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 방송 내용이 좀 길거나, 방송을 전파하는 담당자의 발음상 문제로 선임들조차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제대로 내용을 듣지 못하면 갈굼을 받는다. 그럴 땐 “잘 못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빠르게 잘못을 인정해야만 했다. 억울하지만 무조건 이해하지 못하고, 못 들은 후임의 잘못이 되는 거였다.

  둘째, 방송 내용을 큰 목소리로 전파하지 않았을 때. 사람이 살다 보면 목이 아플 때도 있지 않은가. 감기에 걸렸을 수도 있고, 본래 발성이 좋지 않아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낱’ 이등병에게 열외란 없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제일 큰 목소리로 방송 내용을 메아리처럼 전파해야만 했다.

  셋째, 뛰어가지 않았을 때. 지금 생각해도 마지막이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 중 하나였는데, 일단 전파를 마치고 나면 다른 내무반 또는 생활관에서 ‘누가’ 행정실로 갈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앞뒤 가리지 않고 총알처럼 튀어 나가야만 했다. 만약 계급이 좀 올라가서 눈치를 보고 있다든지, 머뭇거리면서 나보다 더 군번이 낮은 후임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면 바로 갈굼이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소대 내 3명이 필요한 작업에 5명, 또는 6명이 행정실 앞에 모이기도 했는데, 보통은 군번이 가장 느린 순으로 아래에서부터 간부가 자르곤 했다. 물론 이 과정도 예외는 있었다. ‘선착순’으로 작업에 차출되는 경우, 내 선임보다 늦게 도착해서 첫 번째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생활관으로 돌아온다면 또 바로 욕을 먹었다. “내가 ‘나다’ 싶으면 뛰라고 했냐, 안 했냐!!” 이런 식으로 호통이 떨어지곤 했다.     


  ‘나다 싶으면 뛰어라.’ 꽤 피곤한 규칙이다. 물론 내가 선임의 위치가 되었을 때 삶의 여유를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방송을 듣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후임들을 보면서도 끝내 마음이 편치는 못했다. 군 복무 시절에는 행정실 앞으로 뛰어가는 행위가 타파해야 할 악습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 몸에 배었던 습관은 훗날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 예쁘게 포장을 한다면, 나다 싶으면 뛰는 행위는 ‘솔선수범’이라는 고사성어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특수교사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도 가끔 교무부장님한테 학교 메신저로 전체 메시지가 오곤 했다.     


  ‘학년별로 한 분씩 교무실로 오셔서 음료수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언어만 순화되었을 뿐이지, 사실 군인 시절 내무반에서 듣던 방송과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는 ‘일찍 출근하신 선생님들께서는 죄송하지만 1층 창고에서 제설 도구 챙기셔서 교문부터 제설 작업에 참여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죄송합니다.’ 등의 긴박한 메시지가 올 때도 있었다. 나는 항상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로 목장갑부터 착용하고 출발했다. 군인도 아니고, 이등병도 아니었기에 교무실이나 창고까지 뛰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항상 거의 작업장에 도착하는 순서는 상위권이었다.


  사실 일반 회사원뿐만 아니라 교사도 다 똑같은 인간이다. 인간이 모이는 곳에는 늘 빌런이 있기 마련이고, 단체생활 또는 작업에 요령을 부리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누구나 다 1교시 이전에는 각자 수업을 준비해야 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법이다. 수업 직전까지 제설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거나, 일과를 다 마치고 ‘학교 전체를 위해’ 잔업을 하고 싶은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군인 시절의 버릇이 몸에 배어 있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거나 체력이 좋지 못한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작업에 솔선수범하곤 했다. 이 모습은 자연스럽게 여러 선생님 눈에 좋게 보였을 것이고, 관리자들의 눈에도 긍정적으로 보여서 결국 학기 말 교사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을 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란 인간은 ‘나다 싶으면 달려라’ 마인드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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