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남 Jun 24. 2024

이렇다 할 글제는 떠오르지 않지만

  왠지 글을 끄적이고 싶은 그런 밤이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일기장을 펼쳤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키보드를 타닥거리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적을 수 있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생각해보면 삶은 기분 좋은 것들로 가득하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정말 곰곰이 생각하고, 부단히 찾아야만 볼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평소에 내가 나를 잘 돌보지 않았구나.’


  이렇게 글을 끄적이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감정이다. 오늘 하루는 참 길었다. 새벽 3시 반에 눈이 떠졌고, 4시쯤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했다. 음악조차 들리지 않는 헬스장의 새벽은 왠지 고요해서 기분이 좋다. 무거운 무게를 들지 못해도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 없고, 내가 하려던 기구에 누가 죽치고 앉아있는 꼴을 볼 필요도 없다. 오로지 내 페이스대로, 오롯이 내 숨소리와 통증만을 느끼며 운동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 난 새벽 운동이 좋다.


  퇴근 후에는 동네 월드컵경기장에서 5km 정도를 뛰었다. 집에 와서 씻고, 청소했다. 고양이들이 그새 만들어놓은 고구마들을 치우고, 사료를 채웠다. 정수기 물을 갈았다. 고양이들을 쓰다듬었다. 골골거리는 소리와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나도, 그리고 우리 고양이들도. 퍽퍽한 닭가슴살도 쫄깃하게 느껴졌고, 참기름 한 숟갈 두르고 비빈 무생채 비빔밥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동네 빨래방에서 건조까지 마친 빨랫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난히 시원하게 부는 밤바람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YOASOBI의 노래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으며 빨래를 갰다. 오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오늘의 내가, 두서없는 글이 저물어 간다.


  아마 나는 매일 이렇게 살 순 없을 것이다. 아니, 분명 나는 이런 삶을 매일 유지할 수 없는 범인에 불과하다. 어떤 날은 고주망태가 되어 씻지도 않은 채 매트리스 위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슬픔을 마주하게 되는 날도 분명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찾아와도 절망에 빠져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행복의 조건이 꼭 돈에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사랑받고 있음에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꼭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감사하다. 주변을 돌아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삶, 그게 내가 내린 행복의 조건이다. 고로, 나는 ‘자주’ 행복한 인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뻔한 PT(D+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