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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도 Sep 26. 2023

교회를 떠나며.

 15년이 넘는 꽤 긴 시간 동안 몸담아왔던 종교로부터 마음이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고백하는 것 또한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떠나고 난 뒤에는 조금 더 빨리 인정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더 일찍 불편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배웠고, 교회의 지도자로서 맡은 학생들에게 제가 읽고, 듣고,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저의 신념과 교회의 신념은 항상 부딪쳤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교회의 행동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교회에 왜 십일조를 내야 하는지, 왜 이런 큰 교회 건물이 필요한지, 이 조그마한 나라에 왜 이렇게 교회가 많은지 어떤 좋은 말로도 이해시킬 수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관철시키는 것은 사실 사기에 가까우니까요. 설사 그것이 교회라는 조직을 유지하는 것에 꼭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이 문제는 아마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아마도 지금의 교회를 예수님이 보신다면 2000년 전에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난동을 부리신 것보다 더 분노하시며 교회를 뒤집어엎으실 겁니다. 제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했다면요.


 밤에 캄캄한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마치 등대처럼 빛을 내며 우뚝 솟아있는 많은 십자가들을 우린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등대의 역할은 한 자리에 묵묵히 서서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바다에서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지친 선원들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 속에서 교회의 십자가는 등대와 같은 역할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일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교회가 하나의 종교로써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변에 존재하는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종교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우리 사회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로를,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종교는 우리에게 이런 진정한 '쉼' 또는 '안식'을 줄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종교의 근원적인 힘은 타인을 진실되게 품을 수 있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어둡고 캄캄하다고만 생각되는 지금의 사회 속에서 인간성이라는 밝은 빛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죠. 그리고 우리는 이 빛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종교 경전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대부분 유사한 이야기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조금 다를 뿐이죠.

 

 저는 앞서 인간의 마음에게 '쉼'을 선물해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서는 마음이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혼자 조용히 따뜻한 햇빛을 벗 삼아 산을 오르며 마음속으로 대화하듯 기도할 때나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절의 쪽마루에 앉아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는 평화로눈 시간을 보낼 때, 또 지혜로운 사람들이 쓴 책을 읽을 때 오히려 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자연과 평화와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이 그 누구의 강요 없이  마음속의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깨 위에 짊어진 무거운 짐들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나’에게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교회에서 '쉼'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교회에서는 더 이상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처와 공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삶의 격동기에 서있는 학생들이나 청년들에게 그 어떠한 마음의 안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봉사의 강요와 헌금의 강요, 소속감에 대한 압박과 같이 '진실성'을 잃어버린 모든 종교적 행위들은 오히려 독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부터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신앙이라는 마음을 이용하여 어떤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정말 정말 잘못된 일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이 문제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욱더 우리 사회 속에서 종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제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일삼는 종교에 더 이상 몸담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교회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유독 저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이유는 다른 종교에 비해 특히 '배타성'이 강하다는 느낌을 늘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유난히 타 종교에 대한 공격성이 강한 것도, 큰 건물을 소유하기 위해 많은 빚을 내는 이유도, 파생되는 이단이 많은 것도, 기부하는 쌀 하나하나에 그들의 교회 명함이 보란 듯이 박혀 있는 것과 잦은 헌금을 강요하는 것  등등..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는 이 수많은 이유가 '배타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그 누구도 종교가 가르치는 대로 완벽한 삶을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지금 교회의 이런 배타성은 성경 속에 담겨있는 우리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정말 주옥과 같은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생존을 위해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를 일부러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저는 결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다음 장의 글들 역시 지극히 기독교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은 제가 성경을 읽고 느끼고 배운 대로, 그리고 저의 경험과 저만의 방식으로 이해한 성경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저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규정지어도 이렇다 할 변명거리가 없다는 사실도 인정하겠습니다. 저를 모순적이 다거나, 이단이나 사이비라고 생각하시면 여기서 그냥 책을 덮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성경과 예수님이 가르치고 있는 삶의 지혜가 가득 담긴 이 이야기들, 지금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 상처들과 공허함, 분노와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한 햇살처럼 녹여줄 수 있는 꽤 괜찮은 이야기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우리는 지금 마치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시기와 질투가 만들어낸 고통과 불평등이 정말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지만 작은 빛으로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그렇게 계속해서 전해지며 더 큰 빛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람들이 신이 살았다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증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구별하지 못하는 무분별한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마음을 서서히 죽여가는 치명적인 '독'과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이 감추어진 보물들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발판 삼아 우리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 가아 고자 한다면 분명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 가야 할 길을 비춰주는 밝은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저는 그 역할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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