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화단을 하얗게 수놓은 조팝나무 꽃을 글머리에 쓰겠노라고 작심한 뒤 수일이 지났다. 출근길에 보니 꽃이 다 지고 없었다. 그나마 명줄이 긴 죽단화는 말라비틀어진 채 줄기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만복이네 떡집』이라는 동화가 있다. 도서 사이트 yes24에서 2023년 5월 23일 기준 어린이 도서 부문 39위로 베스트셀러 항목에 포함된 책이다. 이 책을 쓴 김리리 작가는 학원장의 아내다.
수업 일주일 전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만복이네 떡집』을 다음 시간까지 읽어오라고 했다. 네 명의 아이 중 세 명이 이미 읽은 책이라기에 재미있게 읽었냐고 물었다. 세 아이 모두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원장님 아내 분이 쓴 책이에요.”하고 일러주자 아이들이 놀라워했다.
책의 개요는 이렇다.
대인 관계 능력이 형편없어 주변 사람들과 매일같이 다투는 주인공 만복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신비한 떡집을 발견한다. 거기 있는 떡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대신 표에 적혀 있는 횟수만큼 착한 일을 해야 한다. 만복은 착한 일을 해서 떡을 먹고 이능을 얻는다.
꿀떡을 먹고 달콤한 말을 하게 되는가 하면 바람떡을 먹은 뒤엔 자주 웃게 되며 무지개떡을 먹고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지어낸다.
책에는 이밖에도 ‘다른 사람 생각이 쑥덕쑥덕 들리는 쑥떡’, ‘오래오래 살게 되는 가래떡’ 등 다양한 떡이 등장한다.
3학년 수업 당일 아이들에게 『만복이네 떡집』에 나온 떡 중 무슨 떡을 제일 먹고 싶냐고 물었다. 모든 아이가 쑥떡을 먹고 싶다고 답했다.
가희는 남자친구가 자기를 진짜로 좋아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윤오는 요즘 들어 슬픈 표정을 자주 짓는 아빠의 걱정거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주이는 자기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듯 보이는 엄마의 속내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주이에게 어째서 동생보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주이는 요즘 들어 엄마가 자기를 칭찬하지 않는다며 눈을 내리깔았다.
분홍 머리핀을 한 주이는 얌전히 앉아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칭찬에 인색해진 데다가 잘 자라는 밤 인사도 건네지 않는다는 주이 엄마의 마음에 어떤 그늘이 졌는지 알 길이 없어, 수업 시간에라도 칭찬을 자주 해주겠다고 약속할 따름이었다.
아이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성격에 쑥떡을 먹으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릴지도 모른다. 타인의 음습한 생각과 괴로움을 지근거리에서 맞닥뜨리고 시치미 떼는 건 짐작건대 견디기 힘든 일이다. 내게 떡을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지개떡을 먹고 재미있는 소설을 한 편이라도 더 써낼 셈이다.
죽단화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봄꽃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만 문장 안에 붙잡아둠으로 내년을 기약할 힘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