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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토파일럿 Jul 24. 2023

농지연금 덕분에 얻은 어설픈 효자 코스프레

일상다반사

염소농장이 망한 후부터 줄곧 집에만 계시던 부모님은 농지연금을 받게 된 후부터 다시 노인정에 다니신다. 그 즈음부터 난 동네어귀에서 마주친 어르신이나 친척들의 안부전화를 통해 효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인데...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 뭐에 홀린 듯 계획은 잘 맞아떨어졌다. 절실한 시기에 농지연금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스승을 때마침 만나게 되었고, 적당한 물건이 나와서 스승의 경험을 등에 업고 경매낙찰을 받았다. 아름드리 리기다소나무가 빽빽했던 그 땅은 이제 듬성듬성 심긴 복숭아 과수원으로 "전"이라 불리기는 아직 어설프지만 농지로는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어설픈 효자

그 어설픈 농지 덕분에 부모님은 매월 백만 원 남짓한 돈을 평생 받게 되셨다. 

큰돈은 아닐지언정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치면 기본적인 생계는 꾸려가실 수 있을 정도...

그 정도로 효자라고 불리는 나 역시 어설픈 것은 마찬가지 지만.

해봐야 소용없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차라리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몰두한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때 대응한다. 


막내딸의 판정승

강원도가 멀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돌아왔다. 밤늦게 집에 도착한 그 시각 누가 봐도 시골에서 놀다 온 것을 짐작케 하는 막내의 흙투성이 바지 주머니에는 부모님께 드린 노란색 신사임당 초상화가 꼬깃꼬깃 접혀있었다. "00이 드림"이라는 빈 봉투만 시골에 남기고 온 탓일까? 편지라도 한 장 써드릴 껄, 아님 겉봉에 "사랑해요"라도 한 마디 적어드릴 껄, 하는 껄무새 소리만 맴돌았다. 


새벽부터 부스스한 눈으로 베개하나 덜렁 안고 따라나선 막내딸은 역시 잠보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 머리만 대면 꿈나라로 가는 저 능력은 누구를 닮은 건지... 조금만 잠자리가 불편해도 잠들 수 없는 나로서는 부러웠다. 먹는 시간, 고양이와 놀던 시간 빼고는 종일 코를 골며 자던 딸아이는 과다한 잠 때문인지 고양이 털 알레르기 때문인지 모르게 눈두덩이가 부풀어 있었다. "토리가 만져달라고 배를 까는데 어떻게 안 만져?!!!!!" 아내의 잔소리 공격을 예상이나 한 듯 대답대신 질문을 던졌다. 


시골집 고양이 토리


놀고, 먹고, 자고 잔소리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질문으로 응수하고 게다가 두둑한 용돈까지 지 엄마보다 훌쩍 커버려 어린이날 선물도 받지 못하는 사춘기 소녀지만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사는 니가 진정 챔피언이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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