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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Jan 26. 2024

괴물 후기 (스포주의)

가여운 아들


 사오리의 남편은 불륜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죽었다. 그래서인지 사오리는 아들이 혹시나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생계도 꾸려야 하고 살림도 살아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다 해낼 수는 없다. 부족한 엄마인 거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미나토가 항상 가다. 미나토에게 작은 이상이라도 생길 때마다 생각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친다. 미나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다. 그래서 미나토는 대충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한다. 미나토가 머리를 자른 것, 신발 한쪽 잃어버린 것도 물통에 흙이 들어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모두 요리가 원인이다. 하지만 미나토에게 요리는 아직 꺼낼 수 없는 세상이다. 다행이 사오리는 카마다군이 미나토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


 사람 안에 있는 괴물은 그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물고 늘어져 덩치를 키워간다. 그리고 그 약점을 건드리는 자에게는 이빨을 드러낸다. 가여운 아들 미나토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호리에게는 '유흥주점에 다니는 주제에'라고 공격한다. 미나토의 안전을 약속해주지 않는 교장에게는 손녀의 죽음을 언급하며 슬펐냐고 괴로웠냐고 추궁한다.


 미나토를 오래된 터널에서 발견하고 그가 돌아오는 차에서 뛰어내리던 날, 사오리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린다. 미나토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자신의 피해의식을 미나토에게 쏟아붓는다. 미나토는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짓말.



거짓말


 호리는 거짓말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카마다의 장난으로 여자가 있는 술집에 드나든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져버린다. 소문 옮기기를 좋아하는 여교사는 호리에게 여자한테 집착하는 건 술집에서만 하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호리에게 교장의 소문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야기하던 그 교사다. 술집에 드나든다는 가짜 소문은 나중에는 다른 거짓말들과 뒤엉켜 호리의 모든 것를 앗아간다.


 호리는 미나토의 거짓말과 그에 대처하는 학교의 태도로 인해 직업을 잃고 학대교사로 신문에 나고 여자친구와도 헤어진다.


 호리는 역 앞에서 여자친구에게 싱글맘 가정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모자가정에서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세간의 편견을 말했다. 웃을 때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눈빛이 좋지 않으니 학부모와 대면하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눈치가 없어서 입을 다물어야 할 때 말을 하거나 심각한 상황에서 사탕을 까먹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의 힌트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자도둑


 교장의 남편은 형무소에 수감 중이다. 주차장에서 손녀를 차로 치어서 죽게 만들었다. 사고다. 실제로는 교장이 사고를 냈다는 소문이 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면회실에서 교장은 남편에게 손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녀와 슈퍼에 가서 좋아하는 과자를 고르라고 했는데 '좋아하는 과자를 사면 과자도둑이 나오니까 싫어'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남편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네' 하고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은 손녀의 무덤에 대해 물어본다. 교장의 표정이 다시 굳어지며 '따로 준비하겠대'라고 말한다. 남편의 표정도 따라서 굳어진다. 자식과의 단절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한 번의 사고로 사랑하는 손녀를, 그리고 자식과의 관계도 잃었다. 무엇보다도 반 평생을 함께 해 온 서로를 잃었다. 그럼에도 교장은 다시 살아가려고 한다. 학교로 돌아가려고 한다. 아직 자신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다. 손에 쥔 종이배는 가라앉지 않기 위한 것인지, 무언가를 흘려보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태풍 앞에서는 위태로워 보인다.



두 세계


 미나토는 요리가 자꾸 신경 쓰인다. 화재가 있던 밤, 미나토는 카마다의 라이브방송에서 호시카와의 이름이 나오자 핸드폰을 들어 확인한다. 하지만 요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요리의 말투를 따라 하는 하마구치에게 미나토는 짜증이 난다.


"하나도 안 똑같아"


 요리는 미나토에게 자신의 아지트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미나토는 완전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감정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요리에게 흐르는 마음을 편안하게 놔둘 수 있다. 두 아이는 우나리부에를 흔들며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지만 문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둘 만의 세계인 폐전철을 아름답게 꾸며나간다. 두 아이 모두 한부모 가정인 덕에 방과 후는 온전히 함께 폐전철에서 보낼 수 있다. 그곳에서 '괴물' 게임도 하고 숙제도 한다. 장래에 대해 글짓기를 할 때 요리는 두 사람의 이름을 가로로 늘어놓고 글을 맞춰나가자고 제안한다. 미나토는 호리 선생님이 알아차릴까? 하고 말하지만 요리는 힌트를 숨겨놓는다. 'みなと' 세 글자만 좌우대칭으로 적은 것이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세상에 힌트를 보내고 있었던 걸까.


 요리는 자신이 곧 전학을 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미나토는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에 두려움을 느끼고 요리를 밀쳐낸다. 엄마가 흉내내오카마(여장남자) 개그맨의 몰래카메라가 더 이상 웃기지 않다.


 미술시간에 요리와 미나토가 싸운 날, 미나토는 혼자서 폐전철로 간다. 조명을 켜야 할 만큼 어둑해져도 요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얼마 후 착신음이 들리고 미나토는 미소를 되찾는다. 요리가 온다고 한 모양이다. 미나토는 하얀 꽃을 꺾어서 손에 들고 요리를 마중 나간다. 요리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카이부츠 다레다' 하고 괴물게임의 도입음을 부르면서 오래된 터널을 통과한다. 반대편에서 요리가 따라부르는 음성이 들리기를 기대하지만 그곳에 나타난 사람은 엄마였다. 미나토는 큰 비밀을 들킨 것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그제야 터널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요리는 미나토의 엄마를 발견하고 조용발길을 돌린다.


 미나토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것은 선택이었다. 두 세계에서 갈팡질팡 하던 순간들과의 이별이었다. 미나토가 요리와 함께하는 폐전철의 세계를 선택했을 때, 그는 엄마에게 '미안해 아빠처럼은 될 수 없어'라고 말했다. 태풍이 오던 날, 미나토는 자신을 가게 여기는 엄마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엄마 나는 가지 않아."


(영화 번역에서는 미안해하지마로 나오지만 직역하면 '지 않아'다. 이렇게 번역해보면 미나토의 '지 않아' 라는 말이 엄마가 구축해 놓은 세상에서 빠져나와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독립된 자아를 보다 드러내 준다)



태풍


 누구의 마음속에나 태풍은 불고 있다. 그 태풍 속에서 힘없이 쓰러져 나뒹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꼿꼿하게 버티고 서서 떠내려가는 기억들을 감내하는 사람도 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태풍 속을 헤쳐나가는 사람도 있다. 뒤늦게 미나토와 요리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아무리 유리창을 닦아봐도 태풍 속에 있는 어른에게 순수한 세상은 쉽사리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태풍을 피하는 방법은 미나토와 요리가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세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어둡고 두려워도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 뒤돌아보지 않는 것.


"다시 태어난 걸까?"


 요리의 질문에 미나토는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태풍이 그친 눈부신 세상 속을 달려 나간다. 한없는 자유로움에 소리친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철문은 어느새 보이지 않고 눈 앞에는 길게 뻗어 있는 녹슨 선로가 보인다. 오랫동안 지나지 않아 녹슨 길, 통념이라는 철문으로 막혀 있던 길을  아이는 나아가려고 한다. 길 앞에는 이미 어두컴컴한 터널이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다. 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거짓말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다시 태어난 걸까?' 라는 요리의 질문에 미나토가 내린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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