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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의 여정을 마치다

1976년 4월 1일

by 이상수

삼일의 갈등을 끝내고 3월을 넘어 4월로 이어져 자유롭게 된 첫 번째 어려움은 먹는 문제였다. 큰 수탉 한 마리를 삶아 혼자 먹기를 사양하지 않던 왕성한 식욕을 준비 운동도 없이 그냥 시작했으니 무모하다는 얘기를 후에 듣게 되었다. 미리 준비과정이 있음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식사 양을 줄이며 죽을 먹는 기간도 필요하며 금식 전날은 설사약을 먹어 속을 비워야 한다고 했다. 돌아보면 '믿음으로'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덤벼들었으니 '무지가 용감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외로움이 힘들게 한다. 어쩌면 먹는 문제의 극복이 가장 쉬운 싸움이라는 생각이다. 사흘만 견디면 먹는 일을 포기한다 결단하면 그만이다. 주방을 벗어나 흘러나오는 맛있는 음식의 냄새도 무시하면 된다는 의미다. 보다 어려운 자신과의 씨름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외로움을 싫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더불어 사는 게 아닌가? 잠시 떨어지는 시간을 정했지만 그 시간을 견디기가 쉬운 게 아님을 배우다. 제한된 공간에서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십계명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가 처절한 영적인 싸움을 펼쳤던 모세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출애굽기 34장 28절).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러 광야로 가사 사심 일을 밤 낫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누가복음 4장 1-2절).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참아내다.


외로움이 친구를 찾아 헤매다 만난 게 그리움이다. 새벽이 열리면 그리운 얼굴들이 그림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부르면 당장에 달려올 수 있는 얼굴 들이다. 모두 삶의 현장에서 바쁘게 삶의 밭을 일구고 있다. 4일 일요일은 이곳에서 다섯 번째로 맞이하는 마지막 주말이다. 오전 공동체 모임에서 축도를 했다. 모임이 끝난 후 지금까지 금식한 사람의 목소리가 힘이 있다며 격려해 준다. 오후엔 그리움에 지친 이들 열아홉 명이 함께 와서 손을 잡으며 더러는 허그도 하면서 기쁨의 정을 나누다. 둘러앉아 손뼉을 치며 찬양을 하고 말씀을 읽은 후 기도를 했다. 어떤 엄마는 가까이에서 각이 선 내 얼글을 계속 바라보고 있기도 하여 내가 오히려 민망했다. 달라진 모습이었나 보다.


9일. 40일 마지막 날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수를 할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산책을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하다. 신약성경을 네 번 읽었고 구약성경은 역대하부터 말라기 까지를 읽었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고백하며 산에서 수고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밤의 커튼을 내리다.


4월 10일 토요일. 낮 12시. 약속의 40일 금식을 끝내는 순간이다. 숱한 날들이 하얀 스크린 위로 점점이 흐른다. 밖에는 이른 아침 출발한 힘센 공동체 가족들 여러분이 벌써 도착했다. 나를 업고 산을 내려가기 위한 배려다. 기도원에서 나를 위한 점심식탁을 준비했다. 고마운 마음이다. 미음, 된장국, 물김치 세 쪽 등을 조심스럽게 먹었다. 먹고 나니 새 힘이 솟아난다.


산 아래로 내려올 때는 나를 업으려고 온 분들보다 맨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올 수 있었다. '천천히 갑시다' 소리를 들으며 하산하게 됐다. 기도원 원장님도 큰길까지 내려와 택시에 오를 때까지 배웅해 주셨다.


교회에 도착하니 기다리던 여러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웃들도 일부러 찾아와 인사를 한다. 대전에서 아버지가 오셨고 연무대 가까운 곳이 집인 누나도 보인다. 아내는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나는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마무리 기도를 했다. 조용히 저울 위에 몸을 올리다. 46kg에 바늘이 머무른다. 약 12kg의 몸무게가 줄었다.


금식보다 더 어려운 것은 매일매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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