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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대한 이야기

심는 대로 거두리라

by 이상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생들에게는 시험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 있다. 대체적으로 상대 평가제를 적용하여 성적을 정리했다. 기말에 받은 성적표를 펼쳐보면서 서로 다른 얼굴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는 동안 오직 한 번 선생님에게 성적에 대한 항의를 한 적 있다. 고2 미술 과목으로 1학기에 분명 '수'였다. 그런데 2학기-학년말에 수. 우. 미. 양. 가 중에서 '양'으로 기록된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그림에 대한 기술적인 면보다는 이론적인 시험을 통해 성적을 산정했기에 뭔가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무실을 찾아갔다. 미술 선생님 자리로 가서 인사를 한 후 이론 시험을 크게 실수한 면도 없는데 1학기에 비해 추락한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을 하던 선생님의 미묘하고 어색한 얼굴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미 기록된 생활통지표는 고칠 수 없는 결과였으니 말이다.


대학교 시절 모 교수님이 절대평가제를 적용 수강생 전원에게 100점으로 성적을 채점한 일이 있었다. 시간이 매우 흘렀음에도 이미 고인이 된 교수님의 이름과 수강 과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생들이야 A+의 성적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행정을 맡은 사무처에서는 모두 똑같은 성적이니 다른 과목에서 우열을 가려야 했을 것이다. 성적에 따라 장학금 지원 문제가 있을 경우를 생각해서 하는 염려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을 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실기시험 두 번 볼 수 있도록 제한하던 1980년 때의 얘기다. 등록한 학원 동료들과 단체로 보건소에 갔다. 건강검진을 위해서다. 까칠한 여 의사의 냉소적인 한 마디가 지금까지 기억된다.


"무슨 마이카 시대가 온다고 법석을 피우는지 모르겠네"


1종 보통 필기시험은 단 번에 합격을 했다. S코스, T코스와 ㄹ코스는 공식대로 하여 통과됐다. 문제는 도로 주행이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가 귀했다. 핸들을 잡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학원에도 낡은 픽업 1대와 1.5톤 트럭 1대로 자동차 두 대가 전부였으니 주행 연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1980년 대한민국 자동차 보유 대수가 53만 대였다는 보고다. 2024년 상반기 등록대수는 26,134,000대이니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실기 두 번 실패는 도로 주행에서였다. 자동차 탓을 하는 것은 핑계일 따름인 줄 알면서도 도로 주행을 큰 도로에 나가 시험을 치르게 되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이라고 통과하지 못했으니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숨을 죽이며 두 번째 필기시험 원서에 인지를 붙인다. 필기시험은 당연히 합격을 했다. 코스 기능도 공식을 적용하면 실패할 이유가 없었다. 드디어 세 번째 도로 주행시험을 보는 날이 밝았다. 시험관이 조수석에 앉아 감독을 하고 수험생들은 시험을 보는 트럭 뒤에 타고 가면서 순서에 따라 한 사람씩 운전석으로 내려가 신호등을 켜고 끄는 것을 시작으로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출발한다. 세 번째인지라 비교적 여유 있는 자세로 주행을 마치니 감독 경찰관이 '합격'이라고 판정을 내린다. 44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의 일처럼 돌아서서 미소 짓던 얼굴을 그려본다. 면허증을 취득한 그 해에 봉고를 처음 운전하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나면서부터 자동차가 많아지니 보건소 여 의사의 말이 문득 떠오르는 까닭은 무슨 의미일까? 완주에 사는 차 할머니는 2종 보통 면허증 취득을 위해 2005년 4월 필기시험에 처음 도전을 했다. 그러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950 번째에 합격선 60점을 받았다. 기능 및 도로 주행도 쉽지가 않았다. 10번에 걸쳐 합격의 기쁨을 맛보다. 960번의 장기 레이스의 마침표를 찍고 면허증이 72세의 차 할머니에게 전해졌다. 초록이 진하게 번지는 2010년 5월의 일이었다.


사이버대학교에 등록을 하고 늦은 배움의 장을 펼치고 있다. 출가한 딸도 가정, 직장 일로 쫓기는 시간 속에서 같은 학교 다른 과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삶의 활력소다. 여기서도 시험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강의를 반복해서 듣고 교재를 읽고 또 읽어 준비한 과목은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게으름을 피운 과목은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는 성적표를 보면서 후회를 한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기본 원리야말로 변함이 없다. 좋은 결과를 바란다면 땀을 흘려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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