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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an 21. 2021

 책방을 만든 사랑의 힘

며칠 전 좋아하는 작가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너무 인상 깊게 읽었던, 여러 번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책 <태도에 관하여>의 임경선 작가님이셨다. 내밀한 생각에 공감 가는 것이 많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에게 작가님의 책을 많이 추천했었다. 그렇게 조용한 팬으로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뜻밖의 연락이 온 것이었다. 작가님은 이틀 후 제주에 잠시 방문하시는데 우리 책방에 꼭 오고 싶으시다고 갑작스럽긴 하지만 깜짝 이벤트를 잠시 열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갑작스러운 작가님의 제안에 나와 남편은 호들갑을 떨면서 “어머 어머 어떡해”를 연발하여 말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휴식시간에 책방을 찾아주시는 것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책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깜짝 이벤트까지 제안해주시다니. 그 고마운 배려심에 힘드시겠지만 용감하게 게릴라 사인회를 하자고 말씀드렸다. 작가님은 서울로 돌아가기 전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동안 사인회를 하기로 해주셨다. 이 작은 시골에 갑작스럽게 작가님을 뵈러 올 독자분들이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단 한 분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작가님을 마주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행사 바로 전날, 게릴라 사인회를 연다고 공지를 올리자마자 많은 분들이 문의를 주셨다. 갑작스럽게 하게 된 행사라 책을 많이 준비하지 못해 모든 분들의 예약을 받아줄 수 없어 아쉬울 정도였다. 행사 당일, 한 시간 전부터 많은 분들이 찾아와 기다리고 계셨다. 조용했던 책방이 사람의 온기로 가득 찼다.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방문했던 분들도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어떤 손님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이라며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했고, 오늘 오길 잘했다며 고맙단 말로 우리에게 마음을 대신 전했다. 한 시간을 꼬박 채워 한 분씩 정성껏 사인을 해주시고 책방을 둘러보기 시작하셨다. 전부터 꼭 와보고 싶은 책방이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책 큐레이션과 공간, 낡음과 새로움 등이 너무나 잘 조화롭게 어울려있는 책방이라는 엄청난 칭찬 세례를 받았다.


가끔은 내가 이런 과한 칭찬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재주만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데 이 칭찬을 내가 다 받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늘 남아있다. 이 책방은 우리에게 기적과 같이 온 우주의 힘이 도와주어서 만들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위해 조금씩 움직여준다는데 그 말이 정말인 것 같았다.  책방 준비할 때 온갖 궂은일을 다 도와주었던 친구들, 내가 갖고 있지 않던 감각을 가진 친구들의 크고 작은 조언들,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여 필요한 물건을 사러 함께 가준 친구들, 조금이라도 보태서 쓰라며 용돈을 쥐어주고 달려가시던 인생의 선배님들, 책방을 오픈하고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주었던 많은 지인들,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어 책방에서 강연을 하고 사인을 해주신 많은 작가님들, 그리고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 이 분들이 다 없었으면 이런 칭찬이 나올 수가 있을까 싶다. 내가 가진 능력에 조금씩 힘을 보태준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 많은 고마움이 없다면 결코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책방을 꼼꼼히 둘러보고 서가의 책을 하나하나 살피는 분들이 큐레이션이 좋다는 칭찬을 해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우리가 잘 차려놓은 맛있는 밥상을 아주 맛있게 남김없이 드시고 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잘 차려놓은 밥상은 나 혼자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힘으로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칭찬의 몫은 여럿이 함께 나누어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늘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 애쓰려 한다. 사람 없이는 그리고 사랑 없이는 완전히 완성되는 것이 없다. 온 우주의 힘이라는 것이 그 사랑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방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 돌리고 싶다. 천천히 다 갚는 날이 올 지 모르겠지만 늘 내 마음에 살아있는 그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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