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Dec 27. 2020

어쨌든 긍정

세상을 구하러 아기 예수님이 오신 날에 약에 취해 하루 종일 잠이 들었다 오후 늦게야 일어났다. 세상은 여전히 불안한 뉴스로 가득했고 다리 통증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었다. 약 때문인지 더욱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더이상 이렇게 집에만 앉아있다간 없던 마음의 병도 생길 것 같아 남편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얘기했다. 그때 문득 옆 동네에 사는 좋아하는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라면 이런 울적한 마음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도 이해해줄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가는 길에 우체통에 카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동하면서 카드를 열어보았는데 아주 오래전 나의 소식을 보고 SNS를 통해 친구가 된 분이 보낸 것이었다. 매년 응원하고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손편지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주셨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카드를 보내주신 것이었다. 정성이 담긴 카드를 보자 마음이 녹는 듯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진정성있게 마음을 담아 보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카드 한 장일지 몰라도 카드 목록에 내가 있다는 것이, 내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중요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더구나 많이 만난 적도 없는 사이인데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응원해줄 수 있다는 것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겐 정말 좋은 사람이 많구나, 그걸 너무 당연하단 듯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분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작지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이런저런 고마운 생각을 하는 동안 옆 동네 언니네 가게에 도착했다. 나를 보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문 앞으로 달려 나와 꼭 끌어안아주는 언니, 그냥 그 품에 안겨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다. 언니 저 힘들었어요 하며 눈물이라도 쏟을 줄 알았는데 언니를 보자마자 계속 미소가 지어졌다. 보고 싶었단 말, 고맙다는 말이 이어지고 몸이 어떤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다리가 많이 아프고 약 때문에도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한 것 같았다. 계속 수술 잘 됐어요, 전 괜찮아요, 좋아지고 있어요 이런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바빴는데 나는 그냥 아프다고 털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언니는 내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었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위로를 해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진희가 겪는 고통은 본인만 아니까 옆에서 전하는 말들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좋아질 거야, 기도해줄게. 그냥 오늘 얼굴 보니 너무 좋다.”


언니의 위로에는 어떤 위로에도 힘든 게 줄어들지 않을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음을 알아주는 위로에 아픈 몸도 무기력했던 마음도 서서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작은 말이나 글 한 마디가 닫힌 마음을 여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레 느껴졌다.


힘들다고 울고 있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이 통증을 계속 느끼며 평생 살아가야 한대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병원에서 말했던 큰 수술은 피했고, 큰 장애도 피했으니 말이다.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라 당장 내 앞에 있는 게 가장 크게 느껴지겠지만 조금 눈을 돌려보면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고 잘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무조건 잘 될 거라고 믿고 희망을 품는 수밖에 없다. 혹여라도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나를 이렇게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겐 좋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날 위해 한 마디씩 기도해주는데 좋은 결과가 없을 리가 없다. 희망을 갖고 잘 견뎌내야 한다. 어쨌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봐야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바뀔 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의 고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