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가 면접교섭을 거부하다
작년 겨울 그의 일방적인 면접교섭 중단으로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는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빠가 오지 않는 이유를 묻기도 하고, 주일마다 엄마 아빠와 다 같이 교회에 가자고 말하던 아이는 더는 아빠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늘어났다.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아이의 소식조차 궁금해하지 않던 그에게서 6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아이가 처음에는 아빠를 찾았으나 더는 찾지 않는다는 말을 전했다.
그제야 그는 아이를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아빠의 존재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빠랑 만나서 재미있게 놀까 하며 최대한 아무 일 아닌 듯 물었지만 아이는 울면서 재차 만남을 거부했다.
그에게 최대한 아이의 입장에서 거부 의사를 전하고 적응을 위해 당분간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떠냐 물었다. 역시나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혼자 보내지 않으면 법적으로 조치를 취하겠다며 협박하는 투의 어조를 유지했다. 6개월 전과 변함없는 강압적이고 이기적인 태도에 과호흡이 오며 숨이 턱 막혀왔다.
지긋지긋했다. 할 수 없이 아빠와 만나기를 거부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아 그에게 보냈다.
그에게서 셋이서 보는 건 괜찮겠냐는 답이 왔다.
아이에게 물어보겠지만 그전에 전화로 직접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했다.
내 물음에 아이는 통화도 거부하며 눈물을 흘렸다.
왜 이렇게까지 된 건지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아이에게 갑자기 만나러 오지 않는 아빠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일이 바빠서라는 핑계로 대신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나 고민이 되었다.
둘이서 통화로 대화하는 척 자연스레 아이의 마음에 벽을 허물어볼 것을 제안했다. 부쩍 조잘조잘 말이 많아진 아이가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관심을 보일 것 같았다. 그는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
아이에게 “아빠랑 엄마랑 전화할 건데 옆에 있어줄래?"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냈어?"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아이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와의 대화가 생경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한 어색한 대화를 이어갔다.
다행히 중간에 아이는 관심을 보였고 셋이서 함께하는 통화에 금세 적응해 평소처럼 한참을 떠들었다.
전화 도중 아빠랑 엄마랑 셋이서 놀러 가자는 그의 말에 아이는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나도 아빠 보고 싶어요."
아이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그 후로도 아이는 아빠랑 엄마랑 언제 놀러 가는지 물으며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몇 시간 전까지도 아빠와는 전화도 하기 싫고, 만나기 싫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가 불과 전화 한 통으로 이렇게 마음이 풀어지고 신나 하는 모습에 어쩐지 울컥했다. 들떠있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등을 토닥였다.
'실은 아빠가 보고 싶고 그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나마 어떻게든 아이의 소식을 전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사실 나는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 면접교섭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 적대적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부모상담에서 그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 아이도 보지 않겠다 말하고는 모든 연락을 무시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알아서 아무는 게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았다.
또한 감정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보내는 하루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데 다시 흔들릴까 두려웠다. 그 생각만으로 내 안의 불안이 꿈틀댔다.
그러나 면접교섭은 아이의 권리였고 양육자로서의 의무였으며 엄마인 나의 책임이자 무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