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머발레 × Under the trees' Voices
한스 판 마넨의 <Kammer ballett>은 카라 카라예프,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존 케이지의 음악들이 하나의 곡처럼 이어지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초연했다. 줄거리를 없애고 오직 음악과 춤만 남긴 조지 발란신의 뜻을 이어받은 한스 판 마넨은 여기에서 더 발전시켜 네오클래식을 모던발레와도 접목시켰고, 컨템포러리 발레까지 넘나들고 있다.
* 여기서 잠깐 개념을 짚고 넘어가면 고전발레에 대한 반동으로 탄생한 현대무용은 여러가지 사회적 메세지를 담았으나 모던발레는 현대무용의 영향을 받았어도 어디까지나 추상발레이다.
* 네오클래식 발레와 모던발레의 공통점은 둘 다 추상발레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네오클래식 발레는 고전발레의 아름다움을 되도록 지켰고, 모던발레는 현대무용의 영향을 받아 고전발레 테크닉에서 벗어난 움직임도 많이 시도했다.
* 그렇다면 모던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분명 차이는 있다. 모던발레는 위에 썼듯이 움직임 자체는 현대무용의 영향을 받았어도 어디까지나 추상발레이다. 그러나 컨템포러리 발레는 동시대적인 사회적 메세지나 안무가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냥 20세기는 모던발레, 21세기는 컨템포러리 발레라고 생각하면 쉽다.
다시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 이야기로 돌아오면, 작품의 제목인 "Kammer"는 독일어로 "작은 방", "실내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무용수들이 서로를 관찰하면서 때로는 생기있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거나 관능적인 몸짓으로 밀어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타인들로부터 소외된 한 무용수의 몸짓은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표현하면서 존재론적인 고독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https://youtube.com/shorts/3Sv5KvOGvJA?si=A78yJ35lsfaJWUVv
이 작품에 쓰인 음악들을 작품 흐름의 순서대로 쓰면 소련 작곡가 카라 카라예프의 전주곡 중 1, 2, 3, 5번과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K. 159, 존 케이지의 '풍경 속에서',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K. 87이다.
* 카라 카라예프의 전주곡. 작품에 쓰인 1, 2, 3, 5번의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들은 후 발레영상을 감상하면 그 묘미와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https://youtu.be/Ww5a87YMx2E?si=2BTYZha52kdEN9hy
카라예프의 전주곡 1번이 흐르면서 무용수들이 등받이가 없는 스툴을 들고 서서히 등장을 한다.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16분 음표의 넷잇단음표들이 그려내는 음악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스툴을 든 무용수들이 여유롭게 무대 위로 걸어나오는 장면이 대비되어서 재미있다. 그러다가 피아노가 2분 음표에서 악센트를 주는 순간 무용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스툴에 앉으면서 음악을 그대로 표현하니 음악을 듣고 발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https://youtu.be/lvAX4k5bi1Q?si=ghqQziDikGXT0F4-
*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들은 춤곡 느낌을 주는 음악들이 많다. K.159도 그 중 하나이다. 음악의 아티큘레이션을 무용수들이 그대로 폴드브라로 표현하고 있다. 피아노 선율이 악센트를 줄 때 무용수도 팔과 손끝으로 동작을 강조하니 그 재미를 놓치지 말자.
https://youtu.be/BHxGBs8MnoM?si=fizVU95OqJrshbeA
작품에 쓰인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건반소나타들
https://youtu.be/OVQUXMipANs?si=dIbJx72rP9ZwjZza
https://youtu.be/5igTU4ejOkk?si=nEBoJyBHTjbUdDvZ
* 존 케이지의 명상적이면서도 고요한 선율에 무용수들은 절제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폭팔적인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허용순 안무가의 <Under the trees' Voices>는 이탈리아 작곡가 에지오 보쏘의 교향곡 2번의 제목을 그대로 쓴 작품이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던 보쏘는 2020년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이다. 보쏘의 음악과 평생 예술에 헌신했던 그의 인생에 깊이 감명을 받은 허용순 안무가는 그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 파리에타를 통해 보쏘의 음악세계를 함축적으로 담아 이미 이 세상이 아닌 예술가에게 헌정했다.
에지오 보쏘가 남긴 음악 메세지를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나는 음악을 위해 삽니다. 음악은 경이롭습니다. 음악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가 음악을 공유할 수 있음은 큰 행운입니다. 음악은 삶과 같아서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가능하죠. 그것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모두 말을 하는데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듣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음악은 마법과 같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마치 진짜 마법사처럼 봉을 들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랍니다. 끝으로 완벽함이란, 완벽한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순간을 붙잡아 완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 시작하지죠, 마에스트로!"
에지오 보쏘의 음악은 듣는 순간 빠져든다. 명상적이고 신비스러우면서 모던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반복되는 음형과 베이스로 깔린 선율 때문에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이 연상된다. 고요한 분위기로 빠져들게 하는 보쏘의 반복적인 음형들은 점점 레이어드 하듯이 쌓이면서 점차 속도감있게 전개된다. 현악기의 질주는 전자바이올리니스트를 연상케 할만큼 가히 폭팔적이다.
2024년 3월에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극장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초연이다. 이제 막 태어난 작품이다보니 유튜브에 자료가 없어서 작품에 쓰인 에지오 보쏘의 음악을 담아왔다.
* 에지오 보쏘의 교향곡 2번 <Under the trees' Voices> 중 2악장과 5악장
https://youtu.be/ipqgnf2Usjg?si=bTG5EcsxlJriU76r
https://youtu.be/4iQjH-MteJA?si=oGEDyL2-y_bcb4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