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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혼들의비행 Apr 21. 2023

[공간 3] 넌 김치전만 부쳐?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공간 3] #. 넌 김치전만 부쳐?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내가 한 부엌일은 끼니때가 되면 밭일하러 나간 부모님이 돌아오기 전에 미리 밥을 해놓는 것 정도였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 농사철에 놉을 얻어 일할 때면 새참, 점심, 새참, 저녁, 설거지하기에도 손은 부족했다. 열아홉에 전주에 올라와 오빠,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요리는 나의 담당이 아니었다. 여동생이 자취방에 합류하고, 오빠가 결혼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동생이 결혼하기 전까지 둘이서 사는 동안에도 나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김치와 각종 반찬은 시골집에서 공수해 왔다.   

  

전 직장에서 팀원들을 불러 시골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생일상을 차려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직접 요리해서 밥상을 차려야 하는 상황은 피했다. 친구들에게는 당당하게 말했다. 라면은 끓여줄게. 배달문화가 발달하기 전이었다. 1인가구로 살면서 내가 터득한 요리 방법은 모든 것을 기름 두르고 달달 볶아버리거나, 모든 것을 한 데 넣고 가스 불을 댕기는 것. 하나 더, 뭐든 밀가루를 넣고 반죽해서 부치는 것. 이를테면 김치를 볶거나, 김치를 끓이거나, 김치를 부치는 것. 이 정도면, 일취월장이다.  

   

공간비비 방문객이나 서울에서 오는 강사님이 1박을 해야 할 때 나는 숙박객을 맡는다. 나는 1인 가구, 방은 2개. 숙박객은 양문형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보고 놀란다. 나를 요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오인하거나, 손이 큰 사람으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아침 드세요? 누룽지 어때요? 초면인 숙박객에게 나는 요리는 못 합니다, 말할 수는 없어서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누룽지와 김치로 아침상을 차린다. 때론 근처 콩나물국밥집으로 가기도 한다. 후식은 집에서 10분 거리, 공간비비에 나가서 주얼이 내려주는 커피로 해결한다. 마을이 강사님과 대화를 나눈다. 나는 그 틈을 타 잠시 내 자리에서 혼자만의 휴식을 취한다.     


나는 요리는 못하지만 시골집에서 김장김치를 넉넉하게 챙겨온다. 시골에 살 때 제사 때마다 동생과 함께 전을 부쳤다. 친척들에게 싸줄 것까지 챙기다 보니 기본 다섯 채반은 부쳤다. 종일 기름이 온몸에 배도록, 다리에 쥐가 나도록 부치고 나면 해가 저물었다. 비비와 계절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김치전 반죽을 준비했다. ‘반짝별’이 말했다. 언니가 그렇게 자신감 있는 모습은 처음이야. 내가 만든 김치전이 맛있는 이유는 딱 하나, 엄마가 담은 김치가 맛있기 때문이지. 거기에 팁은, 두부를 넣는 정도. ‘푸른산’이 양파도 조금 넣으라고 알려줬다. 오늘도 오후 간식 타임에 김치전을 부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나의 친구 관계는 비비를 하기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 어렸을 적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했다. 결혼하지 않은 나의 일상은 비비를 중심으로 꾸려나간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내 삶의 토양처럼 가끔 어릴 적 친구들과 안부를 나눈다. 이제 어느 관계가 더 중요한가, 갈등하지 않아도, 싸우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대학교 때 만난 친구는 결혼 후 중국 주재원으로 떠났다. 놀러 오라고 여러 차례 연락이 왔는데 나는 가보지를 못하고, 결국 코로나가 왔다. 친구네는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다시 중국으로 간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긴 안부를 나눴다.     


어릴 적 친구들은 다르게 사는 나에게 응원과 지지보다는 걱정과 궁금이 더 많다. 그건 안타까움일까? 아쉬움일까? 그러니까 너는 뭘 먹고 사니? 거기는 어떻게 운영하는 거니? 잘살고 있는 거니? 코로나에 더 힘들지는 않니? 나는 A부터 Z까지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늘 잘 있다고 말한다. 그건 사실이니까. 나는 마을과 주얼이 외부 강의를 해서 돈을 벌어온다고 말한다. 친구에게 건재함을 전하고 싶었다. 그때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넌 그럼 김치전만 부쳐?

하하하.

나는 박장대소했다.

아니, 내가 김치전을 잘 부치지. 요리도 못하는 내가 말이야. 나도 마냥 놀지는 않지. 뭐든 하지. 말을 하면 할수록 뭔가 궁색해진다.   

   

나는 뭘 할까?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움직임을 하나하나 나열할까? 그런 일은 친구도 결혼생활에서 충분히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친구는 내가 돈이 되는 일을 찾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뭘 해야 할까? 공동체적 삶에서 개인의 역할은 스스로 찾았다. 꼭짓점 하나라도 흩어진다면 바로 허물어지는 삼각형 구조, 마을과 주얼, 내가 함께 공간비비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삼각형의 한 점을 잘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외부 강의를 나갈 때 나는 적막강산 공간비비에서 책장을 나란히 정리하면서 어디선가 찾아올 비혼여성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날,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도 관심을 가져보라며, 2021년 공모주 청약 일정과 주식 공부 유튜브 채널 리스트를 보내왔다. 심심할 때 경제 공부하라고. 나를 걱정하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다. 친구는 이제 주식을 공부하고, 나는 여전히 김치전을 부친다. 내가 찾아낸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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