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무 살은 팬데믹과 함께 시작되었다.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학교를 가고 동기를 만나며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을 시기였다. 마스크를 쓰는 게 불편하고 마음대로 나가 놀지 못해 억울해했던 시기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마음의 병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내가 20대 초반에 겪은 성장통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1) 코로나 블루
그때 당시에도 코로나 블루라는 말은 유행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저런 사람들도 있겠구나. 하긴, 그럴만 하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지금 내가 그렇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시절 엄마는 요양병원에 근무하셨다. 보건의료계열 종사자는 다른 업계보다 타격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함께 사는 가족 중에라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나오면 병원 전체에 큰 민폐라 여겨졌고, 우리 가족은 늘어만 가는 확진자 수를 바라보며 외출 빈도를 줄여갔다.
한 달 동안 집밖에 전혀 나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는 조금씩 무기력해졌고 대학 공부,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은 아직 먼 일이라 생각하고 미뤄뒀다. 침대에 누워 드라마나 보고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이런 내 자신이 한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지도 않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만 가르키며 자책한 것이 무엇보다 나를 가장 많이 갉아먹었다.
2)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것
스물 한 살은 나에게 스무살 때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걸 도전하는 해였다. 대학교 러닝크루 회장이 되었고, 새 아르바이트를 구했으며 연애도 시작했다. 나는 시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런 내 성향이 종종 나타나 날 괴롭게 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 시간이 더 괴로웠기에 나는 무언가를 시작해보았다.
그 시절 나에게 필요한 건 구체적인 성과나 화려한 찬사가 아니었다. 누구나 하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그저그런 일이어도 좋으니 시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마치 운동을 하는 것 보다 헬스장까지 가는 게 마음 먹기 더 어려운 일인 것처럼 난 시도라는 게 가장 어려웠다. 몸을 움직이고, 남들과 소통하고, 때로는 웃으면서 내가 깨달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냥 어떤 일이든 도전하면 자연스럽게 그 다음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3) 나의 바닥을 보는 일
스물 둘이 되었고 반년 정도 사귄 애인과는 이미 헤어진 후였다. 동아리는 내 실수로 중앙동아리에서 제명되었고 교수님들과 소통하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스물둘이 되어도 갓 졸업한 고등학생 같았다. 주위 친구들, 언니들, 나보다 어린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언제나 위축되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나보다 성숙해보였다.
그게 그때 내가 보았던 내 바닥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아직 철없고 눈치 없고 어렸다. 나는 원하는 걸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내가 여전히 한심했다. 그리고 누가 날 한심하게 바라볼까봐 두려웠다. 사실 난 정말 어린 나이였고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바닥을 보며 내 초라함에 상처를 받았다.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난 내 바닥을 보았기에 수면 위로 다시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 날 가장 힘들게 만든 게 바로 나라는 걸 안다. 한심해보이기 싫다면서 날 한심하게 바라본 건 나였으니 말이다. 나는 사실, 침체되었던 동아리를 되살려보려고 노력했고 매주 최고매출을 갱신하는 식당에서 성실하게 일했으며 이런저런 대외활동도 직접 찾아서 해보았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보다 잘해낸 게 더 많았고 잘해보려 노력한 순간이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4) 내가 성인을 시작했을 때
성인이 되기 시작하며 나는 점점 조급해졌다. 내가 아닌 남들의 삶이 내 시야에 들어오면서 '남들은 이러던데, 난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불안이 시작된 것이다. 이건 남들보다 앞서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들과 어느정도 비슷한 선에서 걷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나는 정말 내가 보기에, 또 남들이 보기에 주변인에게 걱정 안 끼치고 잘 살고 있는 어엿한 성인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또 글쓰기란 것을 시작했다. 시작은 늘 나에게 다음 행동을 불러다줬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에는 내가 어엿한 성인이 되는 것을 누군가 지켜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누군가는 이 불안을 공감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스무살에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지만 난 성인이 된지 얼마 안되었다고 느낀다. 정신적인 연령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가 모두 풋내기처럼 느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나는 내가 적어도 작년보다는 조금씩 생각에 깊이가 생기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글도, 마음도, 커리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