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진심'이 중요하다.
묵상 중
교회동생이 과거 힘든 일을 털어놨을 때
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거야. 크게 쓰시려고 그럴 거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얘기를 통해 교회동생이 그 위치에서 주님의 구원의 통로가 되고 있었고, 그 아픔을 가지고 현재나 미래에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안과 살아갈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동생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했다'라고 해서 '내 말이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구나'하고 넘어갔지만,
돌아보니 '잘못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 말이 '사실'이었어도
'진실'은 나는 교회동생을 위해 함께 마음 아파해줬어야 했다.
아프긴 했지만 말 표현을 잘했었어야 했다.
사실은 중요치 않다.
진심이 중하지...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심이 중하다.
예수님을 떠올리니 아픈 사람들을 보시면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거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는 자와 함께 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고쳐주셨다.
만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네가 있고, 너는 이번 고난으로 앞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면,
이게 기본 교과서처럼 여겨졌을 텐데
사복음서를 읽는 동안 저런 딱딱한 말은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고 한다는 말씀은 있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고 하신다고 말씀하셨어도 이 말은 '그래서 네 고통이 당연해'가 아니라 '네 죄를 사해줄게. 또 네 아픔도 치료해 줄게'라는 위로였다.
아마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을 꿰뚫어 보시니까 각 사람에 맞는 도움 되는 말을 해주셨지 않나 싶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생각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님의 행적에 기초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은 어떤 마을에 들어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시고 우셨고
마르다의 형제가 죽었을 때도 이미 다 알고 계셨으면서도 사람들이 슬퍼하니 함께 우셨다.
함께 슬픔을 나누셨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 힘든 일을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거야'라는 말보다는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귀 기울여 경청해 주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진심으로 '너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니 꼭 힘내!'라는 마음도 전해주려고 한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힘든 일들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고 보듬어주는 사랑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