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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톱니바퀴 Mar 26. 2023

음식점을 그로스해킹한다면

저는 그로스해커라는 직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직무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개인적으로 만나는 분들에게 저를 그로스해커라고 소개할 때마다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뜨는 게 보이곤 합니다. 그때마다 설명을 하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긴 합니다. 해커같은 보안 관련 일은 아니고, 딱 잘라서 마케터나 PM이라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로스해킹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그로스해커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로스해킹은, 말 그대로 그로스를 해킹하는 일입니다. 더 풀어 말하자면, 회사가 어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장 한계선을 확장hacking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간단한 예를 들어 볼까요?




A라는 음식점은 B라는 음식을 1만 원에 팔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8시간 영업을 하며, 식당의 좌석은 총 10석입니다. 손님은 평균적으로 1시간 가량을 가게에 머물곤 합니다. 이 가게는 크게 성공하여, 항상 좌석에 사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하루 8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일으키지는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성장의 한계the limits of growth에 부딪힌 것이죠.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음식의 가격을 올리거나, 영업 시간을 늘리거나, 좌석을 확장하거나... 사장님은 어떤 방안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일지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같이 일하던 종업원 C군이 한계 극복 방안을 분석하여 제안합니다. 


"주변 상권을 감안할 때 음식의 가격이 오를 경우 오히려 방문 손님이 감소할 우려가 크며, 영업 시간의 확장 또한 야간 종업원 고용비용을 고려하여 시뮬레이션할 때 좋은 방안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가게 자체를 확장하는 것이 가장 고려할 만한 방법이며, 추가적으로 배달 및 포장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또한 새롭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장님은 배달 및 포장 시스템은 해본 적이 없어 생소한 영역이었으나, 좌석 확장의 경우 기간이 비교적 오래 소요되고 초기 투자 비용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하여, 배달&포장 업체와의 계약으로 성장 한계를 해킹하기로 결정하여 추진했습니다. 이렇게 A음식점의 일 매출 80만 원의 한계는 일 매출 150만 원으로 확장되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일화이지만, 모든 사업체는 업의 특성, 시장 적용성, 주 고객층, 법/제도 등에 의해 성장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타트업부터 초거대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성장세를 가져갈 수 있도록 그로스를 해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로스해커는 이런 업무를 한다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이런 면에서 위의 일화의 종업원 C는 아주 훌륭한 그로스해커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의문이 다시 생깁니다. 그로스해킹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업무 같지만, 기존에도 유사한 업무는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맞습니다. 그로스해킹은 정의일 뿐, 기존에도 비슷한 작업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중 가장 유사한 직무라면 기업 내부 컨설팅의 개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컨설팅과 그로스해킹은 회사를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면에서는 유사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발생 근원에서의 차이입니다. 회사가 어떤 문제에 대해 해결하고자 할 때, 컨설팅은 외부의 전문가에게 의뢰하게 되며, 그로스해킹은 내부의 전문가에게 분석을 맡기게 된다는 것이죠. 그로스해킹은 이미 회사의 내부에서 임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지내온 내부 관계자의 입장에서 회사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부에서의 그로스해킹이 아니라면 그저 뜬구름 잡는 이상적 명제 이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앞으로 어느 조직에서 어느 담당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같이 수행해야 합니다.

이 '같이 수행한다'는 점이 상당히 색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스해킹은 상세하게는 그로스PM, 그로스마케팅, 그로스전략, 그로스분석 등의 여러 전문 분야로 나눠지는데 단순히 분석결과와 방향성 제시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 업무를 같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이죠. 위의 일화에서 종업원 C가 그로스해커라면 아마 배달 및 포장 시스템 구축을 도왔을 것입니다. 이건 같은 조직에서의 동료이자 파트너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데이터 활용의 유무입니다. 그로스해킹은 상세 직무를 막론하고 모두 데이터 관리/추출/분석 등의 역량을 반드시 보유하고, 직무에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건 논리적으로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역량입니다. 감과 경험, 운에 의한 근거를 최소화해야 하며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는 것이죠! 위의 일화에서 종업원C가 그로스해커라면, 가격이 10,000원이 아닌 11,000원이 되었을 때 매출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그래프 내 곡선 이동으로 설정하고 방문 고객의 평균 나이가 25세임을 산출하여 해당 연령대의 소득 수준을 고려한 영향도 분석을 제시했을 수 있습니다. 데이터가 없는 그로스해킹은 "그냥 이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정도의 감에 의존한 반쪽짜리 의사결정이 되므로, 엄밀히 말하면 그로스해킹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결정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말이죠. 데이터는 그로스해킹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로스해킹의 개념이 등장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많은 스타트업에서 그로스해킹의 개념을 마케팅에 도입하면서 회사 성장 가속화에 활용하며, 많은 대기업에서 그로스해킹을 프로덕트 건강검진의 일환으로 활용합니다. 논리적으로 데이터 작업을 수행하여 약점과 강점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해내는 일련의 작업이 아예 필요없는 회사는 많지 않겠죠. 저희 회사도 마찬가지고요. 비록 신입으로 시작하기엔 어려운 직무지만, 어느 정도 실무 레벨을 높여 2차 전직할 때의 직업으로는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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