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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꽃이 아니라 눈엣가시

by 마리혜

며칠 전부터 남편은 본가의 담벼락에 줄지어 피어있는 메리골드꽃을 퍽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너무 터무니없이 크고 풍성하게 자라다 보니, 휘고 늘어진 가지가 지저분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담벼락을 따라 봉숭아꽃과 어울려 피던 메리골드꽃은 벽 사이의 넉넉하던 공간을 빈틈이 없이 만들어 땅바닥은 온통 습기로 가득 찼습니다.


꽃 무더기가 담장 사이에 습기를 가둬버린 탓에, 담장 밑에는 이끼가 군데군데 누더기처럼 달라붙어 있었어요. 잡풀도 뒤질세라 서로 어울려 마당 한편 작은 숲을 이루었네요.


풀은 제법 자라서 잠깐 돌보지 못한 틈을 타 어느새 씨를 맺기 시작했어요. 꽃밭을 경계로 깔린 잔디에도 풀이 꽤 눈에 띄니 남편은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꽃나무가 너무 많아서 땅이 습해지고 풀이 더 많아진다는 거지요. 잔디밭까지 번져 풀이 쑥쑥 자라서 미처 손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많으니까, 꽃이 꽃이 아니라 밉상이 돼버린 겁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와 기타 일들로 바쁘다 보니, 본가에 들를 때마다 미처 손 보지 못한 마당의 잔디도 꽤 수북하게 자랐어요.


제초 작업을 해야 하는 현실적인 남편은, 메리골드꽃보다 더 커버린 씨 맺힌 잡풀을 보면 투덜투덜. 잔디 위에 파릇하게 크고 있는 파란 풀 잎새를 봐도 투덜투덜. 며칠 동안 투덜이가 되었네요.


어제는 점심 먹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본가에 도착해서 완장 차듯 토시와 장갑으로 완전히 무장하고 잡풀을 걷어냈습니다. 꽃밭이 가까울수록 잔디밭에는 풀들이 촘촘하게 나고, 잎이 반들거려서 싱싱하기까지 했어요.


왜 그렇게까지 투덜거리나 했더니 풀을 뽑기보다 걷어내고 나니까 조금은 이해가 갔습니다. 풀이 가득한 담장 사이에 습기가 가득해서 풀이 자라는 최적의 공간이 돼버린 겁니다.


크게 자란 메리골드꽃과 봉숭아꽃을, 말목을 박고 끈으로 허리춤을 일으켜 세우고 나니까 꽃밭이 훤해졌습니다. 잔디밭도 제초 작업 후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손맛을 제대로 보여준 남편 덕분에, 지저분하던 꽃밭은 봄에 옹기종기 모여 앞다퉈 꽃을 피우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았어요.


“어때, 괜찮아 보여?”

투덜거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뿌듯해하며 묻습니다.

“음, 역시 대단해. 당신이 최고다. 정말!”(아휴, 정말.)

저는 속으로 웃고 맙니다.


잠시 미움받던 꽃들은 다시 태어난 기분일 겁니다. 풀에 가려 미모를 잃었던 메리골드꽃과 봉숭아꽃이 다시 예쁜 꽃으로 되살아났어요. 이제는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뭇하게 웃고 계시던 어머니도 내년에는 풀 때문에 꽃을 심지 않아야겠다는 남편의 말에 내심 서운하셨던가 봅니다.


“어머니, 말이 그렇지. 절대 그렇지 않을걸요?”

눈치챈 며느리가 어깨를 토닥이며 웃으면서 건네는 말에, 어머니의 굳은 얼굴이 금세 풀어지셨어요. 저는 가끔 퉁명스러운 경상도 남편의 뒷치닥거리를 수습하는 역할을 감당할 때도 있습니다.


훤해진 본가의 마당을 둘러보며 오랫동안 분가해서 지낸 우리가 가꿀 미래의 정원을 꿈꿔봅니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작은 텃밭과 제가 좋아하는 꽃나무로 정원을 가득 메우게 될 거예요.


그때도 아마 남편과 오늘과 같은 일로 티격태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가꾸시던 텃밭과 담장의 어머니의 꽃들을 생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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