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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Oct 31. 2024

상상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현실이 되어있고...

흐흐흐 생물을 전공하다 보니, 이런 공상을... (7)

Totipotency


    전공공부를 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용어다. 한글로 어떻게 표현하나 검색을 해보니 '전분화능'이라고 나온다. 한마디로 고구마 줄기만 심어도 뿌리가 나고 잎이 나고... 하나의 세포로도 정상개체를 키워낼 수 있는 무성생식의 주요 근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영어로 'totipotency'라고 하면 되는데, 한자가 끼어들면 용어가 어려워진다. 한자는 문장을 낱말로 만드는 신묘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분화능'만 해도 '모든(全) 조직으로 분화(分化)할 수 있는 잠재능력(能)'을 한자로 압축한 용어이다.


    요즘이야 사이트 자체 번역 프로그램도 잘되어 있고, 표음문자인 한글 덕분에 원어로 공부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교수님이 어느 나라에서 학위를 하셨느냐... 혹은 어떤 교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학점이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공 용어들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특히 흰색과 초록색 표지로 되어있는 원로 교수님들이 집필한 농학전공 서적들은 종이도 갱지 같은 데다 용어가... 아후~ 이후에도 생화학이었나? 시험공부 좀 쉽게 해 보려고 도서관에 해석본이 있길래 빌렸다가 한글인데도 도리어 더 이해할 수 없어서 바로 반납했던 기억도 있다.


    특히 식물, 생물 분야는 과거 일본을 거쳐 들어온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한자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복학해서 3학년 정도 되니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학하신 젊은 교수님들이 많아지면서 원서로 배우기 시작하며 용어와의 전쟁은 우선 일단락되었다. 한자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나 문학, 특히 추론이 가능해서 표음문자인 우리나라의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 주는 데는 분명히 일조한 바가 있다. 그런데 역시 과학이나 의학은 명료해야 해서인지 원서로 공부하는 것이, 한자식 조어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질 수 있게 해 주었다.


    2학년 2학기 분자유전학이었나... 수업시간에 PCR (Poly Chain Reaction)에 대해서 배우는데... 완전 처음 듣는 내용인데, 분명히 1학년 공통 과목에서 배웠을 거라며, 신입생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우리를 보며 교수님이 의아해했었다. 공부를 안 하고 열심히 놀기만 해서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결국은 데자뷔가... 크크크


줄기세포


    그렇게 아마 분자생물학일 거다. 'totipotency'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인간도 식물처럼 어디 배양액에 담가두면 손상된 장기나 조직이 재생되는... 그런 SF영화에서나 볼법한 내용을 상상했었다. 그러다가 상상이 현실이 될 만한 그 유명한 '줄기세포'가 등장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면서 윤리문제에 봉착했다. 배아줄기세포 (Embryonic Stem Cells)는 초기 배아에서 유래하며, 모든 세포 유형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totipotency)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생명체이다. 게다가 아주 큰, 나라를 들썩이게 할 만한, 스캔들이 터졌다. 줄기세포 연구의 인기는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러다가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성체줄기세포 (Adult Stem Cells)는 성인 조직에서 발견되며, 특정 조직이나 장기 내에서 한정된 유형의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게 요즘 줄기세포 약품, 화장품, 미용시술 등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것만 해도 참 획기적인 발전인데... 유도만능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 iPS cells)가 개발되었다. 개발자가 2012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단한 발견이었다.


iPS세포(유도만능 줄기세포)는 성체 세포에서 직접 제작할 수 있는 분화만능 줄기세포이다. 특정한 전사 인자 유전자를 성체의 체세포에서 발현시켜 세포를 재프로그램하여 유도만능 줄기세포로 전환시키는 방법이다. iPS 세포를 제작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일본 교토 대학의 신야 야마나카 (Shinya Yamanaka)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존 거든 (John Gurdon)에게 수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도만능줄기세포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 (분자·세포생물학백과)


인간의 조건


    먼 미래, 기술이 발전하여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사람의 모든 조직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면...


 '오늘은 푸른 눈동자로 외출할까? 금발로 저녁 모임에 나가볼까? 오늘은 좁은 장소에 가야 하니까 작은 몸으로 움직여볼까?'


가 가능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의 뇌만 옮겨서 오늘은 이 모습, 내일은 저 모습, 다양한 모습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류를 공상해 본다. 인간의 조건은 '뇌' 음... 아니면 기억? 즉 메모리? 어쩌면 뇌를 옮기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기억을 백업해 뒀다가 여기저기 메모리칩에 이식하는 날이 올지도... 그러면 인간의 조건은 '기억' 아니면 '추억'이 되는 건가? 그런데 그런 세상에 추억이라는 게 있을까?


영화 매트릭스가 다시 보이는 공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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