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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Nov 07. 2024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겠습니다.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겠습니다. (2)


자취


    혼자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하다못해 유튜브를 보다가도 생각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후회나 참회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왜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아~ 이것만 미리 알았어도...', '나 저때는 왜 저랬을까?' 등등. 피해자도 되고, 가해자도 되다 보니 참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는 그런 통한의 감정 같았다. 그래서 '잘못 살았지만 앞으로 잘 살면 될 거야.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했다.


    방치했던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기 수준이었다. 일기를 관통하는 정서가 반성, 참회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대부분 일기 수준의 글이지만, 한 번씩 가물에 콩 나듯 벗어날 때가 있었다. 음... 굳이 표현을 하자면 회고 정도?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가 지인과 닮았다거나... 소설을 읽다가 옛사랑이 생각난다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옛날 아카이브 영상이 알고리즘에 걸리면 추억에 빠져들었다. 추억 보정으로 아름답게 재탄생한 이야기들에 행복해졌다.


    한 번, 두 번 궤도를 벗어나던 글이 점점 나름의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새로운 궤도를 찾았다고 할까? 또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다는 사실도 모른 채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더해서 그것을 벗어나 깨달음을 구하기 시작했다. '카더라 통신'보다 못한 개똥철학을 '공감'뒤에 숨겨 나불댔다.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인정받으니까 더 행복해졌다. 지금도 외줄 타듯이 글을 쓴다.


도망


    행복의 자취를 따라가다 엉뚱하게 모순을 많이 발견한다. 그 모순이 죄책감으로 발전하고, 죄책감은 불행이 되고, 고통이 되었다. 행복 자취는 욕망의 자취였다. 모순을 발전과정이라고 위안하려 해도, 죄책감은 어쩔 수 없이 남았다. 내가 편하려는 욕구(깊은 고민 없이 교훈 좀 섞어서 대충 재밌게 쓰려는...), 갖고 싶은 욕망(발행수가 많고, 구독자가 많고...), 이름을 떨치고 싶은 공명심이 가득한 허울의 자취를 발견할 때마다 '아~ 도망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지루한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선우정아 님이 나지막하게 '도망가자~'라고 노래했다. TV였는지, 라디오였는지, 유튜브였는지 정확하진 않다. 하지만 듣자마자 가슴이 요동쳤다. '그럴까? 우리 같이 그럴까?' 대화하기 시작했다. 노랫말은 절묘했다. 내 안의 현실감이 살아나 '어디로?'라고 물으면 '어디든지?'라고 노래했다. 지금도 막히면 유튜브에 도망가자 MR 띄워놓고 흥얼거린다. 아파트라서 큰 소리로 외칠 순 없지만, 이거라도 하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진다.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잘못 살았다고 생각 안 하는구나!


    전적으로 개인적인 내용이다. 똑같은 분도 있겠고, 비슷한 분도 있겠고, 전혀 다른 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감해 주는 분도... 별 관심 없다는 듯 흘리는 분도...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고 비난하는 분도 있겠다. 사람마다 심경의 변화 양상은 다르니까. 지향하는 방향도 다르고,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니까. 그런데 결과는 거의 같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얼마 전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19, 20살에 만났으니 20년도 넘은 사이다. 살면서 힘들고 기뻤던 일을 모두 공유해 온 사이라서 가족 같은 애틋한 뭔가가 있는 사이다. 지금까지 만나는 유일한 대학동기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라서 그런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엔... '넌 워래 그런 아이니까...'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마음이 조금 상해서 '어! 나 많이 바뀌었는데...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구나...' 어느 순간 '빡!' 왔다. '내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난 잘못 산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그게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차치하고, 반성, 참회, 추억, 행복 등등... 나는 바뀔 게 없는데...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여태까지 그렇게 사니 참 행복했는데... 어쩌면 백수로 오래 살다 보니 단지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뻤을지도...' 등등, 이런 마음이 싹텄다. 


    '어... 뭐지?' 움튼 마음은 점점 자랐다. '괴롭히던 모든 것들을 이해해 보자...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른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자'로까지 자란 마음은 처음엔 성장의 기쁨으로 행복해진 듯했다. 하지만 결국은 양시론, 양비론으로 결실을 맺었다. 수확의 기쁨은 없었다. 괴로움이었다. 그나마 보람은 다른 길을 찾은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덜 불행함을 택하겠다. 차라리 내 행복을 포기하겠다.


옳은 길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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