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겠습니다. (6)
길을 잃다 : 시발점
초등학교 5~6학년의 사춘기 무렵 친구들 사이에 광풍처럼 몰아친 영화가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 뒤로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등 하이틴 영화가 쏟아졌다. 영화는, 이미연, 하희라, 최진실, 김민종, 최수종, 김보성(허석) 같은 스타를 배출했다. 하지만 내용은 항상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원래는 우리보다 4~5살 많았던 고등학생 형, 누나들을 대상으로 했던 영화니까, 어쩌면 제도권을 부정하는 'X세대' 출현의 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내 취향의 시발점이었는지도 모르고...
난 또래 남자애들과 다르게 축구나 운동보다 소설과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 좀 계집애 같은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도 지인들은 '소녀감성을 가진 아저씨'라고 놀렸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감성이 풍부한 것도, 계집애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주목을 받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고 싶었고, 스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참 잘했다. 이야기도 잘 지어냈다. 항상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싶었다. 아는 척도 많이 했다. 모르는 것은 상상해서라도 그럴싸하게 꾸며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이미 인스타 감성을 기본탑재하고 태어났다. 그래서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었나 보다. 애니도, 영화도, 게임도 판타지 취향이다.
학교 다니면서 왜 그렇게 공부를 했을까 생각해 봤다. 돌이켜보면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없다. 남들은 머리 싸매고 밤새워가며 목표를 위해 코피 터지도록 죽을 둥 살 둥 노력했다는데, 나는 사실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런 시늉만 했다. 좋은 유전자 덕분인지 시늉만 내도 결과가 좋았다. 지금처럼 경쟁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도 한 몫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공부 잘한다고 대접받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공부도, 거짓말도, 지금의 이 시선도... 인생의 한 단편일 뿐이다. 얼마 전까지는 엄마가 강제로 시켜서 마지못해 했다고 원망하기도 했으니까...
길을 헤매다 : 판타지
수능도 어디를 가겠다는 목표보다, 아니지 처음엔 부모님의 바람대로 의대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내 점수로 목표하던 대학은 갈 수 없었다. 지방 사립대는 가능한 수준이었는데... 바로 포기한 걸로 봐선 공부라면 지긋지긋했던 것 같다. 더 큰 이유는 주목받지 못함이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꿈이 어디 있고, 자아가 어디 있어?' 그냥 의대를 갔어야 했다. 그럼 지금 돈이라도 많고, 더 편한 삶을 살았겠지... 아싸리 부모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며 '나'를 포기했거나, 완전히 거슬러 나 하고 싶은 대로 했어야 했다는 후회다. 이도저도 아닌 어벌쩡하게 평판과 보이는 것에 집착했던 결과다. 그렇다 나는 치열함과는 거리가 먼 몸이 편한 삶을 추구했었다.
대학은 그냥 점수에 맞춰 가나다라군에서 하나씩 선정해서 원서를 넣으러 다녔다. 그리고 지금 졸업한 대학교의 캠퍼스 풍경에 반해서 여기를 꼭 다니겠다는 생각으로 하향 지원했다. 목표는 중학교 때 되고 싶어 했던 '유전공학자'를 목표로... 이 목표도 사실은 소설 '쥬라기 공원'을 읽고 아무 생각 없이, 주관이 뚜렷해 보이는 척하려고 떠벌리고 다녔던 목표였다. 특히 소설 챕터마다 평면도형을 보여주고 이것을 해독하는 사람은 천재라고 치켜세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어서 물어볼 때도 없으니까 나중에 맨 뒷장을 먼저 보고 아는 척을 했다. DNA 이중나선구조라고... 그렇게 소위 SKY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런데 입학식이 끝나자 인솔하는 선배들이 우리를 이끌고 교문 밖을 나섰다. '뭐지?' 앞으로 내가 다니리라 기대했던 아름다운 캠퍼스를 뒤로 한채, 뭔가 캠퍼스의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연구소 같은 삭막한 건물로 이끌려갔다. '이런~!' 이공계 캠퍼스가 따로 있을 줄이야. 망했다.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서 햇빛이 비추는 창가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 뒤로 동기들과는 다르게 일부러 문과대(본교) 캠퍼스로 교양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그리고 도서관도 중앙도서관을 이용했다. 겉멋만 잔뜩 들어서는... 허세에 찌든 스무 살 청(소)년 시절이었다.
길을 구하다 : 구도
이후에 내 앞으로 펼쳐진 길은 그야말로 생존(?) 음... 너무 거창한가? 어쨌든 무한 경쟁의 참혹한 길이었다. 게다가 누구는 어학연수를 갔네... 유학을 갔네... 학위를 받았네... 어느 공기업에 내정이 됐네... 뭐 아버지가 금감원 고위직이라더라... 어머니가 의사시더라... 국가 유공자라더라... 진짜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하다못해 어떤 이는 한 달 미국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며... 나한테 '너 이거 성공하면 내가 원 박스 줄게...'라며 1달러를 자연스럽게 미국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에휴 나 그동안 뭐 했냐~?' 어쩔 수 없이 내 특기를 살렸다. '얻어걸리기...'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으며 면접을 보러 다녔다. 아니지 '허울 좋아 보이는 데로'가 빠졌네... 어쨌든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고, 대입처럼 운 좋게 걸리는 게 있기는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해본 것 없이 시늉만 내면서 4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애어른이 되어있었다. 멋지게 표현해서 페르소나에 갇혔다. 한 서른 중반까지도 어떻게 어떻게 얻어걸린 자리에... 거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1등 하면 되는 거지 뭐...'라며 아예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엔 항상 판타지로 도망쳤다. 판타지 속에서는 스타가 되는 길이 좀 쉬워 보였다. 그 속에서는 정해진 길, 스토리, 퀘스트만 따라가면 레벨업을 하고, 먼치킨이 될 수 있었다. 아니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먼치킨은 판타지에서나, 현실에서나, 레벨업 한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릇도 안 됐다. 판타지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덤비고 도전했으면... 모르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결국 실패했다.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 도리어 잘 됐다는 시원한 기분이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돌아봤다. 트라우마, 상처라고 생각한 과거로, 과거로 계속 되돌아가보기도 하고... 잘못된 것,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들을 재조명도 해보고... 반성, 참회도 해봤다. 그리고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흐르는 대로 살지 않고 거슬러도 살아 보고, 철학도 공부하고, 진짜 '나'를 찾겠다고 거창하게 선언도 해봤다. 그런데 아~ 전부 집착이더라. 번뇌이고 고통이더라. 결론이 났다.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간의 칩거로 '나'와 마주했다. 뭐 잃어버린 '나' 혹은 진짜 '나'를 찾고, 자아를 깨닫고... 뭐 이런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그냥 마주하게 됐다. 아니 마주할 수 있었다. 이해가 될지 잘 모르겠지만, 나와 마주하니 길이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쓸 수 있다.
어쨌든 또 하나의 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