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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루 Jan 10. 2023

15만 원의 월급

순진하면서도 어리석었던 지난 날의 고백


시작은 잡지사였습니다.

 

이 말은 마치 제 인생의 잘못된 첫 단추를 알리는 

의미심장한 문장처럼 느껴집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잡지를 좋아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나오는 것부터 패션 잡지에 이르기까지.

집에 쌓아둘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읽어 해치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잡지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잡지가 보여주는 감각적인 그림과 사진, 빳빳하고 두꺼운 질감, 종이 특유의 냄새 같은 것들이

저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 재학 중 한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을 했습니다.

말이 좋아 어시스턴트지 잡무를 보는 아르바이트 혹은 심부름꾼 정도의 일이었습니다.

촬영에 쓰인 옷이나 화장품을 정리한 뒤 업체에 반납하고, 스태프들의 식사를 주문하거나 필요한 소품을 사 오는 등. 선배라 불리는 기자들을 지켜보면서 현장의 대략적인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퇴사를 하면서 잡지에 실렸던 나...(지금과는 달리) 꽤 발랄하다! 


2009년, 당시 제 월급은 15만 원이었습니다.


집이 있던 경기도에서 사무실이 있는 강남까지 오가며 쓰는 차비와 식비를 빼면 거의 무임금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제가 잡지사에서 일을 하겠다고 뛰어든 시기는 이미 잡지 업계가 사양산업에 진입할 때였습니다. 취업의 문이 일반 기업에 비해 좁았고 공개 채용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댈 수 있는 것은 인맥. 당장은 싼값에 제 노동력을 팔지만 선배들에게 눈도장을 잘 받으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형적인 구조 안에 저를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좋아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다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혹은 어리석게.


 

탈출(?) 기념으로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던 사진...! 15년 전의 나를 보니 반갑다. 꽉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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