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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도 시원한 맥주라니

생에 가장 시원한 맥주를  맛본 여자

가장 시원하게 맥주를 마셨던 순간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그날을 떠 올릴 것이다.

사실 맥주는 회사 다닐 때 굉장히 많이 먹었다. 그때 나는 정말 Heavy drinker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외국계 금융 회사였는데, 일이 너무 많았다. 지치고 힘든 회사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던 것 같다. 회식도 좋고, 친한 동료들과의 술 한 잔으로 지친 마음을 달랬었다. 회사를 명퇴하고 나서보니, 술이 맛있었다니 보다는 지친 마음을 달래는 동료들과 그 자리가 좋았던 것 같다.


퇴사하고, 엄마의 밭에 나가서 농작물을 가꾸었다.  가꾼다기보다는 살짝 도와주는 정도였다. 사실 농작물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엄마는 기업적 영농 수준으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감자를 캐러 오라는 것이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온병에 가득 담아 밭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태양이 이글거린다. 조금밖에 안 된다던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감자는 캐도 캐도 끝없이 나왔다. 처음에는 쭈그리고 앉아서 호미질을 했다. 그러나, 다리가 아파서 얼마 캐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바구니에 한가득 감자가 채워지고, 수레로 옮긴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다 보니, 몇 시간 후에 감자를 다 캤다.


이제 집에 가도 되는 건가 하고 있는 찰나!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 많을 때, 감자 캐고 난 자리에 콩 모종을 심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순간 영화 신세계에서 최민식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이러면 이거 나가리인데..."

그렇다. 일찍 끝나고 가겠다는 나의 계획은 나가리가 되었다.  나기리면 어떠한가 도와주러 왔으니, 하나라도 더 도와야지...


바로 콩 모종을 심기에 돌입한다. 이랑을 일구려 삽질을 하고, 구멍을 파서 콩 모종을 조금씩 나눠 심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오후 3시가 넘어서 끝났다. 가져온 물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다 먹고 갈증이 밀려왔다. 다리도 천근만근 지쳐서 걸어갈 기운도 없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냉장고에 맥주병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말했다.


"사장님! 시~~~ 원한 맥주 한 병 주세요~~ "


맥주병을 받자마자,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뚜껑을 따서 콸콸콸 맥주를  따랐다.

하얀 거품이 흘러 넘칠세라 컵을 입으로 가져가 꿀꺽꿀꺽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아~ 청량하다는 말은, 가슴속 깊이 시원하다는 말은 광고에나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내 생에 이리도 시원한 맥주를 먹은 적이 있었단 말인가?

아직도 그날의 그 맥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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