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시아버님을 추억하는 여자
며칠 전부터 냉동실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잡동사니 음식들이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터지기 직전이었다. 뭐가 어디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냉동실을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늘 가슴 한구석에 짐처럼 남아있었다. 아마도 정신없는 내 마음 같아서 더 신경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정리란 그저 안 보이는 곳으로 밀어 넣는 것이니까...)
나름 정리를 한다고 공간을 구분했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뒤죽박죽 우주 대혼란의 카오스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불현듯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정리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오래된 음식들부터 버리기로 했다. 냉동실 서랍을 그대로 꺼내 싱크대 위에 부었다.
언제 받았는지 알 수도 없는 이사떡
올 겨울 인심 좋은 사장님 덕분에 서비스로 왕창 받은 붕어빵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붕어빵을 왕창 사 와서 몇 개만 먹고 냉동에 얼려 에어프라이어를 돌리면 처음 먹었던 그 식감 그대로 먹을 수 있기에 나는 무조건 쟁여둔다.)
나름 알뜰하게 살림하는 여자라고 소분해 두었던 국고기 큐브
아이들이 좋아해서 왕창 사두었지만, 요즘 생선이 너무 비리다고 안 먹어 그대로 서랍에 처박혀 있던 고등어
급할 때 쓰려고 1분씩 소분해서 만들어 두었던 짜장과 카레
냉장고에 얼려두면 만사형통 일 줄 알았지만 모두 6개월에서 1년이 다되어가는 음식들이다. 하나하나 비닐을 벗겨 음식물 쓰레기 통에 담았다. 벗기다 보니, 비닐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가 냉동 트레이 끝에 걸리적거리는 뭉탱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청국장이다. 남편은 냄새에 아주 민감한 편이라 청국을 싫어한다. 청국장은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음식 중에 하나이다. 보통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에 먹는 배춧국과 청국장을 좋아하셨다.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님 해드리려고 사놓았던 청국장이 주인을 잃었다. 그 청국장 다 먹은 줄 알았는데, 서랍 안쪽 깊숙한 곳에 들어 있었나 보다. 트레이에서 발견된 청국장을 보며, 또 그렇게 아버님을 생각했다. 청국장을 끓이면 남편은 무슨 냄새냐며 도망가고, 아버님은 두 눈을 찡긋 하시면서 아~ 맛있다를 외치는 그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다.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사는 곳곳에 아버님과의 추억들이 있다.
소소하게 아버님을 추억하며, 다시 또 정리에 매진한다.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고 나니, 냉장고가 이렇게 여유로웠나 싶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정리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냉장고가 한눈에 보여서 냉장고에 붙어있는 냉장고 메모보드도 쓸 필요가 없어졌다. 가끔은 냉장고도 마음도 비움이 필요한 듯하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