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할머니 정기옥 옹
그녀는 어린 시절의 나의 우주이자, 나의 전부였다.
내 모든 순간은 그녀와 함께였다. 할머니는 유독 둘째 아들의 딸들 그러니깐 나와 언니들을 아꼈다.
그녀는 그녀만의 거침없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었기에, 때때로 그 사랑이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다른 유대가, 가슴 깊은 애틋함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애틋한 여동생들도 있었다. 내게는 이모할머니인 그녀들도 우리를 무척이나 아끼셨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때마다 우리 집에 모여 그간의 회포를 풀곤 하셨다. 그녀들이 집에 올 때는 집이 잔칫집 같았다. 할머니는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꺼내서 동생들에게 내어 주었다. 집에서 담근 고추장, 된장, 김치를 싸주고, 동생들 오면 준다고, 며칠간 음식을 장만했다. 우애가 좋았던 할머니들은 종교도 같아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어 주었다. 게다가 모두 일찍 과부가 되어 더욱 그러했다. (아마도 그래서 장수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들은 참 부지런하셨다.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빗자루로 방바닥을 쓸어내셨다. 놀러 온 우리 집에서도 예외 없었다. 다 같이 일어나 아침 일찍 청소를 하고, 할머니가 며칠 동안 준비한 맛있는 반찬으로 아침을 드셨다. 취나물, 산나물, 유채나물, 토란대나물 등등 다양한 나물이 줄지어 나왔다. 거기에 엄마가 산에 가서 주워온 도토리로 만든 도토리묵무침을 메인디쉬로 내놓았다. 고향 음식 오랜만에 먹는다며, 할머니들은 아이처럼 신난 미소를 지으셨다. 그 모습에 큰 형님인 우리 할머니는 더욱 신이 나, 집에 가서 먹으라고 싸준다며 밥 먹다 일어나기 일쑤였다. 진지 잡수시고 챙기시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가열하게 반찬 뚜껑을 열어젖혔다.
할머니들은 손재주가 좋으셨다. 이불에 자수도 놓고, 삼베천으로 바지저고리도 만들어 입으셨다. 특히 우리가 신전 이모할머니가 부르는 막내 이모할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출중하셨다. 신전 할머니는 내가 시집갈 때, 한복천으로 상보자기(밥상덮개)를 만들어 주셨다. 색동문양의 단아한 상보자기를 보니, 할머니의 정성이 느껴졌다. 일찍 시집가는 조카손주를 위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동안 이모할머니가 나에게 보내주셨던 따뜻한 사랑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시집가서 시어른들 잘 모시고, 남편 잘 챙기라는 의미로 상보를 만들어 주셨던 같은데, 상보자기가 아까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튼튼한 상자에 담아서 수시로 열어보았다. 이사 갈 때도 할머니와 신전할머니가 주신 선물은 꼭 챙겼다.
그런 신전 할머니가 얼마 전 10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건강하게 장수하셨지만, 이제 할머니 세대의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이제 그녀들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나의 우주이자 나의 전부였던 할머니들....
그녀들이 내게 보내주었던 무한한 지지와 애틋하고 따뜻하며 유쾌했던 기억들을 나만의 우주에 담아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