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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Aug 05. 2023

작은 조직에서의 불협화음

조직에서의 인간관계

성격차이, 세대차이, MZ세대, 업무스타일, 일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수많은 요소들이 조직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요소이다.

현재 내가 재직 중인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4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기관이지만, 사람마다 많은 이해관계요소가 얽혀있고, 업무스타일이나, 세대차이, 성격차이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삐그덕 대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진다. 하물며, 나는 저 사람과 일하기 싫다고 대 놓고 어필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학창 시절과 다르다.

내가 원하는 친구만을 골라서 사귀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달리, 전혀 색다른 환경에 내몰리는 것이다.

그 환경은 좋은 환경의 유토피아 일수도 있고, 나쁜 환경의 아포칼립스 일수도 있다.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그곳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귀농과 비슷하다. 이미 마을에 어느 정도 룰이 있고, 규칙이 있다면, 그 규칙과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왕따 당하는 그러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그런 규칙을 룰을 따를 생각이 없다면, 처음부터 다른 길을 가야만 했다.

회사도 똑같다. 본인과 잘 맞고, 원하는 사람과만 일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러한 환경이 주어진다면, 업무 효율이 좋아지고, 회사생활이 즐거워지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최근 신입사원들이 입사하고, 부서의 인원이 일부 이동하면서, 이러한 드러나지 않던 인간의 감정들과 엮인 불협화음을 내는 관계들이 수면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맞는 사람과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소모가 격해지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들지 못하는 행태들은, 트러블을 일으켰고, 그러한 트러블은 전보조치나, 인사위원회, 징계위원회의 시발점이 돼버린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원하지 않는 사람과 근무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가능성으로 따지자면, 원하는 사람이랑 근무할 확률보다 원치 않는 사람이랑 근무할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 나에게 많은 악영향을 끼친다면, 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하나, 맞지는 않는 사람과 억지로라도 가면을 써가며, 손발을 맞춰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바퀴는 찌그러져 있을 망정, 차는 앞으로 굴러간다.


둘, 다시는 그 사람과 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척을 지고, 내가 사표를 내든, 그 사람이 사표를 내던, 사생결단을 모토로 부딪히는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보내버릴 순 없는 것이니까.


다만, 내가 사생결단의 모토로 부딪히지 않고, 누군가와 분쟁을 이슈화시켰을 때나, 내가 분쟁은 일으켰으나 과할 용기가 없을 때, 대화로 풀만한 문제를 질 땐 지더라도 숙이고 들어갈 자신이 없을 때, 혹은 이슈가 되어버려, 윗선의 개입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었을 때.


사건의 당사자들은 둘 다 하나의 이득도 얻을 수 없다. 당사자들은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환경요소의 영향을 받아 그런 액션을 취했든, 주변의 시선에서는 이미 그릇이 덜 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져 버릴 것이다. 한번 형성되어 버린 이미지는 절대로 쉽게 깨지지 않는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위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는 바뀌기 위한 노력하는 척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2번의 선택지는, 내가 살기 위한 마지막 무기 중 하나이다.


사생결단 모토를 가지지 못한다면, 불필요한 분쟁은 시간만 낭비할 뿐이고,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과정에 헛된 에너지 낭비할 수는 없다.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도 안된다. 회사에서 그런 감정소모에 에너지를 쓰기엔, 회사는 우리에게 많은 급여를 주고 있고, 그러한 급여를 받는 우리는 일할 시간마저 부족하다. 인간관계로 싸울 시간 따윈 없다.




나에게 회사는, 일도 일이지만, 사람과의 담소,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장소로써도 존재한다. 일부 직장인 중에, 회사에 가서 사담을 전혀 나누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스몰토크조차 없이, 근 9시간을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과 보내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다는 게 내 지론이다. 맞지 않는 사람과도 잦은 의사소통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올바른 방향이다. 만약 내가 그 사람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대화 자체를 거부해 버린다면, 그건 오히려 스스로의 목을 옥죄는 일이 아닐까?


일만 하기 위해 다니는 회사와, 인간관계나 교류가 전혀 없는 회사. 둘 다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회사가 우리의 인생에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그 높은 비율을 재미없게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나 아깝다.




무질서 속에도 질서가 형성되듯이, 회사 안에서 나타는 불협화음으로도, 좋은 멜로디를 형성할 수 있게끔 각자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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