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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Jul 26. 2024

C씨의 이야기

고등학교를 시작할 때 쯤, 사귀던 남자와 헤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귀던 사이였는데, 첫 사랑의 이별이란, 생각보다 간단하게 찾아왔다. 헤어지고 나서 며칠 후,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고백해왔다. 오빠의 친구였고, 나보다 3살 위의 남자였다. 오빠가 없을 때도 자주 집에 놀러오더니, 꽤나 오래전부터 나를 좋아해 왔던 것 같다. 별로 싫은 이미지는 아니었기에, 만나보기로 했다. 는 꽤나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좋지만, 나를 좋다고 중학생때부터 따라다닌 그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그와 만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학원을 수료한 후,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나는 그와 결혼했다. 그는 상냥한 성격이었고, 작은 것에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꽤나 오래전부터 알아왔기에, 연인이라기보다 친구같은 느낌으로 시작한 연애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동화되어 결혼 해 버린 것 같다. 딱히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 라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귀결되어버린 것 같다. 결혼 후 그와의 첫 온천여행에서 생긴 첫째와, 두 번째 온천여행에서 생긴 둘째도 본래는 전혀 계획하지 않고 찾아온 축복이었다. 


 


간호사로 생활하면서 꽤나 생활 패턴이 학생 때와는 달라졌다. 야근을 하고나면, 다음 날의 데이오프가 주어지고, 그 다음날도 휴무가 따라온다. 대신 밤에는, 회사에서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다. 남편이 완벽하게 케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냥한 사람이라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남편은 다정하고 매일매일 아침인사를 보내올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태해지고, 일하지 않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그를 볼 때마다, 짜증이 생기고, 잔소리도 끊기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시어머니가 집에 놀러왔다. 언제나 아이들을 케어해주고, 나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은 그의 어머니. 나는 그녀에게 그의 최근 일하지 않는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녀도 나의 의견에 공감하였지만, 그는 그의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이혼하자고 이야기 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혼 소장을 간단히 들고 오더니, “제출하려면 해보던가?”라며 도장을 흔쾌히 찍어주었다. 아마 내 성격상 절대로 이혼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간호사이기 때문에, 꽤나 전문직, 그의 도움이 없어도 아이들을 키우며 살 수 잇다고 생각했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날 구청에 방문하여, 서류를 제출했다. 나도 그도 어찌보면 자연스럽게 결혼한 것과는 반대로, 충동적으로 이혼해 버렸다. 그는 한 번만 봐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나는 그의 물품을 전부 챙겨서 시어머니에게 그를 좀 데려가라고 밖으로 놓아버렸고 그렇게 우리는 이혼했다.  


 


그와 이혼한 지 20년. 지금의 우리는 어떨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혼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내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고 아이들도 여전히 아버지를 파파라 부르며 좋아한다. 그의 어머니와도 꽤나 사이좋은 관계였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처음에 이혼 할 때는, 아이들이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이야기 듣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잘키우면 된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학창시절에 아이들은 행복하게 잘 자랐다. 첫째는, 타지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둘째는 나처럼 간호사가 되었다. 웃긴건 그다. 그는 나를 꽤 많이 좋아했었나 보다. 지금도 여전히, 그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매년 빠지지 않고, 나에게 나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도 여전히 선물과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침인사도 잊지 않는다. 이혼한지 20년이 지났는데,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사람이라니, 왠지 귀엽지만, 애초에 이혼할만한 일을 안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그와 이혼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번 씩 나의 집에 아이들을 보러 방문하고, 여행을 다녀오면 선물을 가지고 방문하고, 집의 거실에서 자기 집처럼 쓰러져 자고 돌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초밥도 50피스 씩 사오기도 한다. 이상한 사람. 훗.  


 



 


C : 어쩌다보니, 수다스럽게 예전이야기를 털어놓았네. 뭐 나쁜이야기는 아니지만, 왠지 들려주기 부끄럽고 이상한 이야기랄까? 한국의 정서에는 쉽게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례가 꽤나 흔하니까. 네 생각은 어때? 네가 듣기에도 왠지 이상하지?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혼했으니까 관계없잖아. 안 그래? 


 



 


한참동안 정신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뭔가 사실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랄까? 이혼했는데, 사이좋게 지낼 수 있고 집에도 들일 수 있는건가? 이혼한 남편의 어머니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건가? 일본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대중적인 케이스가 아니지만, 가끔 그런 사례가 있긴 한 건가? 꽤 연락하는 것을 귀찮아 하는 일본인인데, 매일 아침마다 안부를 묻고, 이혼한지 20년이나 지났지만, 이혼 후로도 매년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남자가 있다니, 꽤나 재미있는 소재라, 친구의 이야기를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녀의 허락을 득하고, 짤막하게나마, 그녀의 이야기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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