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인사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두려워서였을까
아니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정말 그와의 시간이 영영 끝나버릴 것만 같아서였을까
계속해서 마음속 가장 깊고 어두운 모퉁이에
알면서도 모른 척 그 인사를 밀어두었다.
손끝에 닿으면 금세 부서져버릴 것 같은 유리조각처럼
조심스럽고... 무서워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두려웠던 건 '안녕'이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지 못한 채
가장 아픈 자리에 멈춰 서 있는 나였다는 걸.
붙잡고 있는 듯했지만
실은 붙들리고 있던 쪽이 나였다는 걸.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자연스럽게
낯선 하루들이 찾아왔다.
혼자 맞는 아침이 더 이상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있었고
문득 그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마음 깊은 틈이 출렁이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한때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평범함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나에게 돌아와 있었다.
이제 그 익숙함이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잊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리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온도로
다른 결로
마음 한편에 놓이는 것이라는 걸.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해서
아프게 잃은 것들을 시간이 데워놓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드럽게 놓아주곤 한다.
이제야 비로소 인정한다.
그는 내 삶에 머물던 하나의 계절이었고
그 계절을 지나온 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는 고마웠다고 건네는 마지막 인사
그리고
나에게는 다시 잘 살아내 보자는 조심스러운 첫인사
그와 함께 걸어오던 시간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없이도 이어지는 내 삶을 더듬더듬 걸어가는 나를
이제는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오늘이 쌓일수록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인사를 지나
나는 또 하루를 살아낸다.
그에게도
그리고 새로운 나에게도
마침내, 안녕.
당신이 없는 자리 | 신민아 | 타래(한국학술정보) - 예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