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다
머스크와 그가 이끌 DOGE를 패러디한 영상. 궁중 권력다툼을 다룬 명나라 배경의 사극이 원작이다.
시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트럼프가 그의 오른팔인 머스크 (그리고 경선 과정에서 공화당의 스타로 떠오른 비벡 라마스와미)가 이끌 DOGE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줄여서 DOGE로 불리는 이 기구는 일종의 대통령 자문기구로 정부 효율개선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의 부자, 그것도 대부분의 부를 정부 정책을 따라 일군 머스크에게 공직을 맡기는 게 맞냐는 지적이 많지만… 공식 캐비닛 포지션이 아닌 만큼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 가능한 자리라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말건 당분간은 DOGE의 수장으로 활약하는 머스크에게 익숙해지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세웠을 때 못지않은 야심만만한 목표를 제시했다. 약 7조 달러에 달하는 미정부 예산의 약 삼분의 일, 정확히는 2조 달러를 절감할 거라고. 일각에선 그가 트위터를 인수했을 때 벌어진 파격적인 인원 감축이 공공조직에서 재현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미 머스크는 SNS 계정을 통해 펜타곤, 교육부 등 평소 못마땅하게 여겼던 연방기구들을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국가 행정은 본질적으로 효율뿐 아니라 공정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과 다르다. 미 정부 예산의 약 삼분의 이는 법규 상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용, Direct Spending에 해당한다. Social Security 등 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건 대통령도 의회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정식 기구도 아닌 DOGE의 주장만으로 깎을 수 있는 예산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애초에 머스크가 ‘예산절감과 관료주의 철폐’를 외친 최초의 보수 전사인 것도 아니다. 이미 80년대에 레이건이 DOGE와 100% 같은 목적으로 Grace Committee라는 위원회를 설치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대단한 레이건도 타깃으로 삼은 규제를 모두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애초에 미국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움직이는 나라,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주장이 나오면 시스템이 작동, 정반대 의견이 나와 균형을 잡으며 양극단을 피해왔다. DOGE가 미국을 하루아침에 초혁신국가로 바꾸거나 반대로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스크의 DOGE 열풍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머스크는 올드하고 비인간적 이미지였던 ‘작은 정부, 규제 철폐’의 보수 이데올로기를 온갖 밈과 시베 도지로 포장해 쿨하고 신선하게 만들었다. DOGE에 열광하는 지지자들이 주로 젊은 세대, 평범한 사람들이란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산을 수천억 (심지어 수조 원) 아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정부라고 비효율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는 인식의 확장, 그리고 이에 자극을 받은 새로운 시도들을 위한 토양이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수십 조원, 아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