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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니 Dec 07. 2024

블랙베리, 때로는 잘 포기하는 게 중요하다

귀국 비행기 편에서 영화 ‘블랙베리’를 봤다. 2023년에 출시작이며, 잘 쓰인 대본과 탄탄한 연기로 블랙베리의 흥망성쇠를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영화는 블랙베리가 시궁창에 떨어진 순간에 끝나고, 그 이후 전개에 대해선 별다른 힌트를 주지 않는다. 사실 그 후 벌어진 이야기도 속편을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드라마틱하다.


한때 블랙베리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2009년 기준 회사의 점유율은 북미 50%, 전 세계의 20%에 달했다. 전 세계의 연예인, 오피니언 리더,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도 크랙베리 (블랙베리의 애칭) 매니아를 자처했다. 


하지만 바로 그해,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모든 게 변했다. 


이후 4년 만에 블랙베리의 시장 점유율은 1%로 폭락했다. 회사의 적자는 조 단위에 달했고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다들 블랙베리가 곧 문을 닫을 거라고 했다. 기업회생 전문가 John Chen가 신임 CEO로 부임했지만, 이사회조차도 임종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걸 바랬을 뿐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John Chen은 장의사 역할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회사를 성공적으로 되살려냈고, 나아가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세웠다. 대체 어떻게?


John의 눈에 블랙베리의 본질은 휴대폰이 아니었다. 그는 블랙베리 폰의 강점이었던 보안 기능에 주목, 회사의 정체성을 보안 솔루션 업체로 재정립했다. 사이버 보안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커지는 보안 니즈를 노린 것. 

블랙베리는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대대적인 사업재편을 감행한다. 오늘날 블랙베리는 매출의 90%를 소프트웨어서 낸다. 그들의 보안 서비스는 휴대폰, 클라우드 서버 등은 물론 자동차, 인공지능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쓰이고 있다.  


회사의 기원이자 한때 전 세계를 열광케 했던 스마트폰을 포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블랙베리의 상징인 키보드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연거푸 악수를 둔다. 


뭔가를 얻으려면 내려놓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블랙베리의 부활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블랙베리 부활의 비결? 필요할 때 숙이고, 물러서고, 버리고, 포기할 줄 아는 유연함이다. 원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


참고) 영화는 수작이다. 이 장르의 정점에 있는 ‘소셜 네트워크’, ‘파운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애플 입장에서 다룬 ‘잡스’보단 이 영화를 위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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