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알음알음 입소문이 돌면서 화제가 된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를 봤다. 영화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다. ‘캐리, ‘플라이’, ‘지킬 앤 하이드’, ‘로우’를 뒤섞어 놓은 듯한 이 영화는 연출도 이야기도 거침이 없다. 굳이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는 분들에겐 비추, 인간의 욕망을 선혈 낭자하게 찢어발기는 감독의 메시지가 궁금한 사람들에겐 추천한다. (경고: 고어 강도가 상당하다)
영화는 한물간 여배우가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이용해 젊고 아름다운 클론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최대한 단순하게 말하면) 본체와 클론이 에너지를 공유한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감독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끌려 정작 중요한 본질을 외면하고, 심지어는 파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긴박감 넘치게 풀어낸다. 클론이 본체를 죽이는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지켜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낀 게 나만은 아니었을 것.
영화를 보고 난 뒤 뜬금없이 든 생각, 세상이 격변기이다 보니 다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크다. 다들 답답한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혁신적인 것을 찾아 배회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틀을 벗어난 각종 기관들이 꾸려진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때론 과거와의 단절도 필요하다. 무섭다고 암세포를 내버려 두면 어느새 온몸으로 번지게 된다.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하면 잘라내는 게 답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그것이 겉으로 보기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진행된다. 혁신, 개혁, 혁명... 어떤 이름을 붙이건 마찬가지다. 만일 본체와 클론이 ‘시간을 공평하게 격주로 나눠서 사용하라’는 경고를 지켰다면 둘 다 불행해지는 비극으로 이어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포일러 방지)
‘늙고 못생긴’ 본체를 미워하던 클론은 결국 에너지를 독점하려고 본체를 죽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 둘은 하나, 뿌리를 잘라냈는데 열매가 생기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후 결말은 직접 확인하는 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