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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Mar 02. 2023

저출산과 행복

경제성장, 인구 증가, 장기 통계

며칠 전 7명의 졸업생이 찾아와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30~40대 졸업생 7 명 중 절반 이상이 결혼을 했음에도 한 명만이 딸이 하나 있고 나머지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저녁 자리가 저출산의 현장이었습니다. 이런 추세를 확인해 주듯이 통계청은 최근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가장 낮은 수치라고 발표했습니다.

행복 연구 문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행복과 가족 수는 비례한다고 합니다. 가족이 많으면 잔가지에 바람 잘 날도 많지만, 가족이라는 틀은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젊은 세대는 가족 수에서부터 행복 수준이 디스카운트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저출산을 선택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인구 관련 논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인구 관련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은 1798년에 출판된 맬서스의 인구론입니다. 목사님이자 경제학자인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한다고 지적하면서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는 다가올 산업사회가 가져올 엄청난 생산 증가를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방법에만 의존했습니다. 맬서스는 순결교육 강화, 결혼 연령 높이기 등 성직자다운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시기인 19세기 유럽에서는 2%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매디슨 (Maddison 2005)은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1000년 이후 국민소득과 인구를 추계하였습니다. 매디슨에 따르면 서유럽 12개 국가에서 1000년에서 1500년 기간 국민소득과 인구는 각각 0.29%, 0.16%씩 증가하였습니다. 국민소득은 인구와 1인당 국민소득을 곱한 값이므로 국민소득 증가율은 인구증가율과 1인당 소득증가율의 합으로 표현됩니다. 즉, 1000년 이후 500년 기간 경제성장률과 인구증가율이 각각 0.29%, 0.16%라면 1인당 소득증가율은 0.13%에 해당합니다. 1500년에서 1820년 기간을 같은 방식으로 추정해 보면 동 기간 경제성장률, 인구증가율, 1인당 소득증가율은 각각 0.40%, 0.26%, 0.14%입니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1820년에서 1870년 기간 경제성장률, 인구증가율, 1인당 소득증가율은 각각 1.68%, 0.69%, 0.98%이었습니다. 1870년 이후 2000년 기간을 살펴보면 경제성장률, 인구증가율, 1인당 소득증가율은 각각 2.57%, 0.56%, 2.01%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경제성장률 대비 인구증가율의 비중입니다. 1500년 이전 500년 동안 그 비중은 0.55이었다가, 1500~1820 기간에는 0.65, 1820~1870 기간에는 0.41, 1870년 이후부터는 0.21로 줄어들었습니다. 즉, 산업혁명 이전에는 경제성장에서 인구증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19세기를 기점으로 그 비중은 현저하게 감소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18세기말 맬서스의 인구증가에 대한 우려는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한 문제 제기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성장은 인구증가보다는 1인당 소득증가로 귀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최근 인구가 가장 빨리 증가하는 대륙인 아프리카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의 1970년부터 2000년 기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2.89%이었습니다. 그런데 동 기간 인구증가율과 1인당 소득증가율은 각각 2.69%, 0.20%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경제성장의 90% 이상이 인구 증가로 흡수되면서 실질 생활의 개선은 거의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도 산업혁명 이전의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인구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가장  보여준 학자는 루카스 교수(Lucas 2003)입니다. 그는 산업혁명을 연구하면서 인구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베커의 인적자본 이론을 갖고 설명합니다. 루카스 교수에 따르면 산업혁명을 선도했던 영국에서는 당시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자녀 수를 통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산업사회는 농업사회와 달리 자급자족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를 구하고 돈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 일자리는 숙련도가 매우 낮은 단순 노동으로 구성됩니다. 산업혁명 초기는 인클로져 운동으로 인해 농촌사회가 붕괴되면서 노동력이 무한 공급되는 시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노동자는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렸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  일부 자영업자는 양호한 근로조건 속에서 높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이런 현상을 목격한 중상층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숙련공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이들 부모는 자신의 제한된 소득만으로는 자녀에게 충분한 투자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녀 수를 통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국은 산업혁명 당시 다른 교역대상 국가와 비교할  숙련도가 높은 제품을 공급하는 국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영국에서는 숙련도가 높은 일자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였습니다. 중산층 부모는 점점 자녀의 인적자본 향상을 위해 자녀 수를 통제하게 되었고  결과 인구증가율은 둔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유럽의 다른 나라에 확산되면서 자녀의 인적자본 투자를 위한 자녀  통제는 일종의 보편적 추세가 되면서 경제성장률과 인구증가율은 격차가 커졌습니다. (아래의 그림 참조)


[그림 1] 생산과 인구    

자료: Robert E. Lucas, Jr. (2003)

인적자본 관점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들여다본다면 오늘날 한국의 젊은 부부는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누구나 정규직 대 비정규직, 대기업 대 중소기업, 제조업 대 서비스에서 양극화가 심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해서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라 할 수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있는 직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0%에도 못 미칩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이다 AI이다 하면서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는 미래를 대비할 자신이 있거나, 성격이 낙천적이거나, 재산이 많거나, 확실한 부모의 지원이 있거나, 무모하지 않으면 자녀를 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세대가 ‘무자식 무팔자’를 취한 선택은 대단히 합리적입니다. 미래에는 경제성장률이 낮을지라도 인구증가율이 더 낮다면 1인당 소득은 꾸준히 증가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현 젊은 세대보다 미래의 젊은 세대는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줄어든 인구 환경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높은 확률로 자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대부분 문제는 시각을 넓고 길게 보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둠 이후 새벽이 오듯이, 불황을 견디면 호황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불황 때 성급한 대응 방안은 불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할 때는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신중한 선택을 합니다. 반면, 정부와 정치권은 급한 마음에 금전적 지원 중심의 단기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금전적 지원만으로는 젊은 세대가 지니고 있는 불확실성을 낮출 수 없습니다. 만일 금전적 지원이 부채에 의존한다면 이는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돈 주면서 그 돈은 알아서 나중에 갚으라는 정책은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 뿐입니다. 금전적 지원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없음은 이미 과거 정권들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려면 젊은 세대에게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 세대에 부담을 주는 불평등, 연금, 교육, 노동시장, 공공부문 등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점점 심화된 소득 불평등과 더불어 더 낮아진 세대 간 계층 이동성, 기존 세대의 무책임을 젊은 세대에게 전가하는 연금 제도, 엄청난 금액의 사교육비, 양극화되고 경직적인 노동시장, 비효율적으로 돈을 낭비하지만 철밥통인 공공부문의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하고 우리의 불확실성을 더 심화시킨다면 어떤 저출산 대응책도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왜곡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그 부담을 젊은 세대에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해 합리적으로 저출산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젊은 세대는 자녀 수에서 오는 행복 요인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정치인과 정부는 더 이상 손쉬운 임기응변적인 정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부와 정치인은 무엇보다 먼저 기성세대가 야기한 경제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소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음을 젊은 세대에게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젊은 세대는 자신의 자녀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지니지 못한다면 저출산이라는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Lucas, Jr. Robert E. (2003), The Industrial Revolution: Past and Future, 2003 Annual Report Essay, Federal Reserve of Minneapolis     

Maddison Angus (2005) Growth and Interaction in the World Economy: The Roots of Modernity, The AEI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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