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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를르 Jan 11. 2023

어느 노숙인 이야기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오

오전 9 교대역.

어딘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마치 그의 삶만 멈춰진 것 같이 구석에서 미동도 없이 잠만 잔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이불 대신 종이 박스를 덮고 자는

온몸에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노숙인’이 되어 있었다.


억지로라도 깨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자고 있는 그에게 경찰 2명이 다가간다.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다른 데 가서 주무세요."


그가 덮고 있던 박스를 치우는 순간 를 찌를 듯 한 악취에 움찔한다.

 “어후.. 도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거야…”


손으로 코를 막고는 그를 조심히 흔들어 보지만 미동도 없다.

포기하지 않고 경찰은 그를 툭툭 치 깨우기 시작했다.


이내 꿈틀거리기 시작한 그는 잠을 깨워 기분이 나빴는지 일어나면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개 XX들이 왜 멀쩡히 자는 사람을 건드리고 XX이야!”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옆에 서 있던 경찰을 향해 발길질까지 하고 만다.


"아앗!"

경찰 한 명이 그가 휘두른 발에 다리를 맞고 휘청거린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고함을 지른다.

"아니 XX 왜 잘 자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건드리고 XX이냐고."


그의 고함에 조용하던 역사 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아저씨! 그만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체포합니다"

경찰의 마지막 경고에도 그가 개의치 않고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참을 만큼 참았는지 경찰은 끝내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낸다.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음 날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나는 그의 영장실질심사를 위한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를 구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그 변호하게 된 것이다.


이날 나에게  5건의 사건이 배당됐, 그의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10시부터 재판 시작되는데,

피의자들 9시 40분 넘어 법정에 도착했다.

재판 시작까지 고작 20분 밖에 안 남았는데 접견해야 할 사람은 전부 5명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당 주어진 접견 시간은 4분이 채 안 됐다.


검사가 제출한 영장청구서에는 그가 왜 구속되어 마땅한 악랄한 범죄자인지가 몇 장 걸쳐 곡히 적혀있다.

나는 피의자와 접견을 하는 단 4분 동안 그 영장청구서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야 다.

그렇게 4분의 미션이 시작되었다.

3분 59초. 3분 58초…


좁은 접견실에서 투명한 가림막 사이로 그와 처음 마주하였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악취가 방 안에서 진동했다. 딱하게 앉아 불만가득 찬 눈빛로 나를 응시다.

국선사건을 하면서 그간 많은 노숙인들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현직(?)으로 좀 전까지 활동하던 노숙인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에게는 폭행과 절도 전과가 적지 않게 있었고, 공무집행방해 전과까지 있었다.

게다가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지 불과 2주밖에 안된 상황.


그가 왜 노숙인이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물어볼 틈도 없다.  


"아니 경찰은 왜 또 때리셨어요"

일단 혐의에 대해 물었다.


"XX. 배고파서 참고 참다 겨우겨우 잠들었는데 어떤 개 XX가 툭툭 치며 기분 나쁘게 깨우더라고."

그는 아직 화가 남아 있는지 씩씩거리며 답다.


"아유. 그래도 사람 좀 가려가며 때리시지 하필 경찰을 때리셔가지고…”

공무집행방해죄는 형량이 꽤 센 범죄에 속한다. 특히나 동종전과가 많으면 대부분 구속이다.


"아 몰라. 알아서 하라고 해."

마치 타인의 사건 심드렁다.


출소 이후 2주 동안 혹시나 또 다른 사고 친 게 있을지 몰라 물었다.

 "출소하고 2주 동안은 뭐 하셨어요?"


“… 밥 먹을 돈도 없고, 배고파서 지하철역에서 계속 잠만 잤어.”

무료 급식소가 어딘도 모르겠고. 2주일간 거의 굶으며 잠만 잤단다.


"그래도 배고프다고 남들 돈 훔치고 이런 건 안 하셨나 보네요?"


"그런 거 하기 싫어서 계속 그냥 잠만 잤다니까. 나는 진짜 또 사고 치기 싫었어. 아니 근데 그 XX들이 사람 기분 나쁘게 자꾸 발로 툭툭 치잖아.”


이런 대화들이 몇 번 더 오가다 접견시간이 끝났다.

접견이 끝났는데도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가 구속될지도 모르는 중대한 상황인데도 정작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변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의 거칠고 화난 말투 속에서 그가 진정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나도 잘 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단 말이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이다. 이제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곧바로 영장실질실심사가 시작되었다.   

그를 마주 보고 앉아있던 판사님이 기록을 쓱 훑어보더니 질문을 한다.


"출소한 지 2주 만이시네요. 사회에 있는 게 좋으세요. 구치소에 있는 게 좋으세요?”

이렇게 판사님이 대 놓고 묻는 건 또 흔치 않은 광경이다.  


"몰라요.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성의 없는 대답에 나는 맥이 탁 풀렸다.


판사님도 어이없는지 한숨을 푹 쉰다.

기록을 몇 장 더 넘겨보던 판사님도 딱히  게 없는지 간단한 질문 몇 개를 하고는 나에게 최후변론의 기회를 주었다.


"피의자 교도소 출소 후 또다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지난 2주간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습니다.

배고팠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피의자는 음식을 훔치는 대신 굶었습니다.

2주 동안 굶어 배고픈 상태에서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잠을 청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어렵게 잠이 들었는데 경찰이 툭툭 치며 기분 나쁘게 잠을 깨우니 순간적으로 화가 나 피해자를 폭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사건의 발생경위와 피의자가 가한 폭행의 정도뿐 아니라 부디 짧은 기간이었지만 피의자가 2주간 했던 노력 역시도 참작해 시기 바랍니다.”

짧게 몇 마디하고 끝냈다.


다시 한번 판사님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고민하는 듯 잠시 멍하니 있다 재판을 끝냈다.


오후 늦은 시각

이날 맡았던 5명의 구속여부가 궁금해 영장계에 전화를 했다.  

나머지 4명은 예상대로 결과가 나왔는데

그 노숙인만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풀려났단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주거지도 불분명하고 핸드폰도 없어 석방되면 연락조차 안 되는 노숙인을 

판사님이 어떤 심정으로 풀어 주었는지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정작 회에 나와봐야 아무도 반겨주지 않고 갈 곳도 없을 그였을 텐데

그렇게 외롭고 쓸쓸한 인생이라도 다시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굶으면서까지 노력했던 그의 진심이 혹시나 판사님께 전달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지하철 역사를 오가다 박스를 덮고 자는 노숙인들을 가끔씩 볼 때면 자연스레 그가 생각난다. 

지금도 노숙인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또다시 수감되어 구치소에 있을지, 아니면 혹시나 이날 이후 마음을 고쳐 먹고 새 삶을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 날의 판결이 춥기만 했던 그의 삶에 조금이나마 따뜻한 온기로 다가왔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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