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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피엔스적 Aug 17. 2023

D.P. 시즌2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

악의 평범성은 사라지고 군대는 의미가 없어지고


바꾸려고 하지 마…. 너무 급해.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마지막 순간에 그는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악의 평범성을 말하던 ‘D.P.’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꺼냈다.


D.P. 시즌2는 시즌1과 등장인물만 달랐다면 아마 다른 드라마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1화와 2화를 차지하는 김루리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한계를 느꼈나’란 생각이 들게 했지만, 3화를 보면서 ‘아 하고 싶은 얘기가 달라졌구나’ 싶었다. 개별 인물과 사건에 주목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군대라는 조직과 시스템을 말하고 있다.


진행방향은 시즌1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라는 말에 포함된 조직의 분위기와 이를 묵인하는 시스템이 시즌2에서는 표면 위로 올라왔다.


https://youtu.be/tngyy2UcWuI

시즌1이 말해주던 악의 평범성은 시즌2에서 사라졌다.

악의 평범성은 어디서 오는가. 군의 특수성, 군의 기강이란 말로 허용되던 행위들이 사실은 부조리함을 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시즌1에서 확인했다. 조직과 시스템이 초래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열악한 시설에서 경직되고 상명하복, 연대책임의 분위기가 나에게 다가온 피해를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도록 한다. 그리고 책임을 묻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내 감정이 풀어질 때까지 보복하게 만든다.


‘계급장’이 너와 나의 관계를 정하는 군대문화는 그런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인간을 원초적인 상황에 빠져들게 한다. 우리는 사람을 규정할 땐 나이와 직업, 취미, 학업 성취도, 부모 등 많은 외부 환경을 반영한다. 하지만 군대는 큰 틀에서 모두가 국방의 의무라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나를 규정하는 건 내 가슴과 팔에 붙여진 계급장이다.


마치 존 롤스가 말한 ‘원초적 입장’에 처해진 것과 비슷하며, 시즌1은 군대라는 원초적 환경에서 악의 평범성이 발현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거기에 추리와 추적의 재미까지 더하면서 심각한 이야기를 대중성 있게 풀어냈다.


반향을 일으켰던 시즌1의 성적이 문제였을까. 시즌2는 시즌1의 인기를 바탕으로 군인이라는 개별 대상이 아닌 군대라는 조직과 시스템을 바꿔버리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너무 앞서 있다.


시즌2의 사건은 군대라는 특수성은 사라지고 조직이라는 일반성이 더 크다. 기폭제가 된 사건은 군대에서만 발생할 수 있지만, 군대라는 조직을 건드는 것에 비해 시즌2가 전개되는 방식은 여느 조직에서 나올 법한 상황이다.


거대한 시스템을 건드리고, 이를 부수려는 드라마와 영화는 무수히도 많다. 군대가 다른 드라마에 나오는 조직과의 차이는, 군대에 존재하는 시스템은 국가에 의해 용인됐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공적인 시스템이란 걸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암암리에 유지되던 시스템이 아니며 여기에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특수성도 가미돼 있다.


그 특수성이 어떤 개인도 악해질 수 있는 조건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 연결고리가 시즌2에서는 사라졌다. 거대한 이야기에서 개인의 이야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시즌1과 시즌2의 사이에서 길을 잃은 김루리 사건이나,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이름도 까먹어 버린 인물의 이야기인 3화까지.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지만 본 게임이 시작된 4화부터는 군대가 아닌 다른 조직이었어도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였다. 갈등의 중심에 군대라는 특수성이 그저 배경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10초 넘기기를 반복해도 다음 장면이 이해가 되는 건 연출이 잘됐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까?

D.P. 시즌2는 인물의 매력도가 전작에 비해 겁나 떨어진다.

정의를 지키려는 배트맨 안준호, 배트맨의 로빈이 된 한호열, 정의로운 투사가 된 박범구, 시즌1 말미부터 개과천선한 임지섭까지. 캐릭터의 입체성도 평범해지면서 인물에 대한 흡입력도 시즌1과 비교해 매우 떨어졌다. 거기다 악역(?)으로 나온 인물들은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시련을 극복하는 주인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장면이 이곳에는 없다.


시즌1이란 차(茶)가 식기 전에 시즌2라는 무기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겠지만, 시즌2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군대란 조직이 좀 더 지루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시즌3에 대한 소식도 궁금해지지 않다. 차라리 시즌2의 얘기를 시즌3에서 하면 어땠을까 싶다. 아직 개인으로서 군인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는 건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통해 확인했다.


아직 남은 많은 얘기들에도 시즌2는 차라리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를 건드렸다. 이상 군필자의 D.P. 시즌2 감상기.




평점 : ★★☆, 신병 시즌2도 나온다던데… 비교가 많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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