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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vn Sep 03. 2023

0과 1로 이루어진 오피스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마법사를 양성하는 법


7시 기상, 빠르게 아침식사 후 지하철
9시 10분 전 회사 도착, 오전 업무
12시 동료들과 점심
13시 오후 업무 시작
18시 퇴근, 다시 지하철행
19시 저녁 먹고 자유시간

vs.

눈 떠질 때 기상, 멍 때리며 아침식사
오전 내내 나에게 투자, 자유시간
배고플 때 점심, 이메일과 메시지 체크
카페로 출근, 커피 마시며 오후 업무
침대에 기대어 미팅, 노트북 덮고 퇴근
자기 전까지 다시 자유시간


전자는 내가 생각했던 직장인의 하루 일과, 후자는 현재 내 꼬락서니다. 한량 같은 자태지만 뭐 그게 회사와의 약조였으니, 난 단 한 번도 오피스에 출근해 본 적이 없다. 성과를 내는 데 근무 시간, 장소, 복장 따위는 회사와 나 모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갖춘 우리나라 회사들과 달리, 미국의 회사들은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로 정평이 나있다. 그중에서도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은 특히나 자유로운 직원들의 놀이터를 만드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메타 등 지금의 '실리콘밸리'라는 명성을 만든, 이곳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비유하자면 사용자들을 위한 마법을 만드는 마법사 집단이다. 이들은 사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대를 뒤집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들고 나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창의적인 마법사들을 최대한 많이 육성해야 했다. 


웹 1.0에서 웹 2.0으로 시대를 뒤집는 과정에서 이들이 만들어 낸 오피스가 딱 그런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터였다. 탁 트인 사무 공간, 놀이공원스러운 오락거리들, 자율출퇴근제, 자유롭게 제공하는 맛난 음식과 간식들, 어떤 아이디어든 포용하는 개방적인 분위기, 매년 챙겨주는 스톡옵션까지... 회사 자체가 이렇게 천국이니 편히 나와서 24시간 일하라는 말이다.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멋지니까 올려보는 구글 사옥



그런데 웹 2.0에서 웹 3.0으로 넘어갈 즈음부터, 일부 기업들은 마법사들에게 색다른 놀이터를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바로 원격 오피스.


디즈니랜드 같은 회사에 갇혀있으면 성에 차겠어?
그냥 어디서든 편히 일해. 전 세계가 네 놀이공원이니까.


그래서 그냥 날 좋고 풍경 좋은 곳 아무데서나 일한다


전 세계의 걸출한 인재들을 데려올 수 있고, 오피스 비용도 절감되고, 현실 세계의 사건 사고로부터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있고, 엉덩이 잘 붙이고 있나 감시하는 대신 철저하게 성과만 평가하면 되고. 이들 입장에서도 꿩 먹고 알 먹기다.


모든 기업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웹 2.0과 웹 3.0 사이 과도기에 놓인 기업들이 사내 시스템 유연화에도 보다 적극적이다. 세상을 다시 한번 뒤집기 위해 어떤 솔루션에도 개방적인 편이고, 탈중앙화된 시스템에도 훨씬 오픈되어 있다(물론 때마침 터졌던 코로나19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블록체인..?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수준의 머글이었던 나 역시 운 좋게 현재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제는 원격 세계의 늪에 빠져 영영 오피스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오피스의 유무는 업무의 장르를 완전히 바꾼다. 9-to-6는 시간 싸움이라면, 원격근무는 효율 싸움이다. 전자의 직원들은 엉덩이를 1분이라도 더 오래 붙이고 있을 방법을 궁리하지만, 후자의 직원들은 태스크를 1분이라도 더 빨리 끝낼 방법을 궁리한다.



회사든 사람이든 변화를 꿈꾼다면 스스로 먼저 공부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게 반드시 웹 3.0일 필요도, IT일 필요도, 해외 시장일 필요도 없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싶다면 일반적인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법사들을 가까이하길 권한다. 고여있는 물에서는 흐를 수도,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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