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등
무등산 토끼등 코스는 입구 부터 심상치 않다. 예쁜 나무다리를 지나 바로 경사 급한 돌계단이 나오니 말이다. 짧은 다리를 힘겹게 올리고 올린다. 몇계단 올랐더니 돌계단이 끝이 아니다. 내 시야에 계단이 위로 쭉 이어져있다. 역시 토끼등 코스는 짧고 굵게 끝낼 수 있는 코스다.
누가 내 다리에 쇳덩이를 매달았나. 보이지 않는 쇳덩이가 매달린 다리 하나를 돌계단 위에 무겁게 올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 딸려 올라오는 나머지 다리도 덩달아서 부들부들 거린다. 내 다리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몇 계단 올랐을 뿐인데 벌써 두 다리는 지쳐서 힘을 쓸 수가 없다. 두 계단 오르고 거친 숨을 내 쉬며 잠시 쉰다. 또 두 계단을 겨우 오른다. 벌개진 두 뺨 옆으로 땀이 주루룩 흐른다.
'아직 초입이다. 벌써부터 이러면 안된다.'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 오르막이 언제 끝날 지 모른 채, 발바닥에 힘을 줬다. 여전히 발목이 달달달 힘을 쓰지 못한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누가 내 다리를 잡고 놓아 주지 않는 것 같다. 허공에 발차기를 하고 헉헉 대는 숨을 고르고 물을 마셨다. 물이 달콤하지 않고 쓰다. 한숨을 푹 쉬고 돌계단 위에 주저 앉았다. 그랬더니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휴대폰을 거울 삼아 얼굴을 비춰 보았다. 벌개진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눈 아래에는 평소의 다크서클 보다 더 진한 다크서클이 보인다.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 축축하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눈길을 숲으로 돌렸다. 정비된 길 사이에 앙상한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다. 위를 올려다 보며 한 숨 쉰 뒤, 내가 지나온 아래를 내려다 봤다. 어르신 한분이 여유롭게 올라온다. 이 힘든 길을 정말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 그래, 언젠가 나도 여유롭게 이 길을 올라보자.
엉덩이에 뭍은 약간의 흙은 탈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무거운 다리를 계단 위에 올리고 올렸다. 그리고 다시는 위를 쳐다 보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래 눈이 게으른거야. 오르다 보면 끝에 닿아 있겠지.
다리를 올리고, 잠시 쉬고, 올리고 쉬고, 물도 마시고, 잠시 숨고르기도 수시로 하니 평평한 공간에 놓여진 벤치 여러개가 보였다. 여긴가? 하지만 어디에도 토끼등 표지석이 없다. 좀 더 약간의 경사진 흙길을 걸으니 데크 계단이 나왔다. 이걸 또 어찌 오르나...학창 시절 100미터 달리기 22초, 내가 평소 했던 운동은 집에서 허우적거린 홈트 뿐이었는데, 오르기를 잘하면 그건 말이 안되지.
귀에 들리는 음악을 응원 삼아, 이런 저런 생각을 끊없이 한 채, 오르고 올랐더니, 드디어 운동기구 몇개에 운동하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미 블로그에서 검색해 보았던 토끼등 표지석을 찾았다. 토끼등에 도착한 것이다. 토끼등 표지석을 사진 찍고 손에 쥔 휴대폰을 보았다. 11시다. 집에서 8시 40분쯤 나와 걸었고 무등산 증심사 입구에 9시 30쯤 도착했다, 9시 40분쯤 토끼등 코스를 오르기 시작했는데, 11시에 도착한 것이다. 40분 걸리는 코스인데, 1시간 20분이 걸린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내 몸에 다듬이질을 해 젖은 몸을 쫙 펴준 것 처럼 너덜너덜 해진 듯 했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톡 쏘는 시원한 콜라를 마셔 개운한 것 처럼 느껴졌다. 이제 내려가자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해냈다. 해냈어.
그런데 이상했다. 내려가는 내내 어디서 된장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둘 올라가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분들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나는데, 내 몸에서 나는 구린내가 스멀스멀 내 코를 찌른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순 없지. 다 내려와서 개운하게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시기 위해 별다방으로 들어갔다. 아,,, 그런데 내 몸의 냄새가 너무 구리다...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