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주 May 08. 2023

걷지 않으면 커피는 마실 수 없다

땀 냄새

체력이 저질 체력임을 절실하게 느껴 날마다 무등산을 오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변함없이 추리닝 대충 걸치고 평소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물론 짧고 굵게 오를 수 있는 토끼등 코스를 선택하는 것도 여전하다. 솔직히 겁이 너무 많아 익숙한 토끼등 코스를 날마다 찾은 이유도 있다. 오늘은 꼭 한시간 안에 토끼등 표지석 사진을 찍어 보리라 결심했다. 


역시, 오르기 시작하자 마자 짜디짠 땀이 줄줄 쏟아진다. 손에 든 물을 주머니에 급하게 쑤셔 넣고 얼굴에 줄줄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아냈다. 머리카락도 흠뻑 젖어 앞머리를 뒤로 쓸어 내렸다. 등과 배에도 땀이 흥건해 입고 있는 옷이 답답할 지경이다. 그리고 몸에서 된장 냄새가 꾸리꾸리 올라 온다. 오른팔을 들어 코를 소매에 닿아 본다. 윽...지독한 냄새가 풍긴다. 왼팔도 들어 코를 대본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일까. 어쩜 이리 구린 냄새가 날 수 있는지, 내 옆을 누가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르는게 너무 힘들다 보니, 땀 냄새로 가득찬 머릿속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각이 잠시 멈춰 빈 공간만 남았다. 


드디어 시간 단축에 성공했다. 55분만에 토끼등 표지석을 만났다. 목표한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는 도대체 언제 힘들었냐는 듯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날에도 토끼등 표지석을 향해 올랐다. 어제 오늘 허벅지 근육이 힘을 쓰느라 무리가 됐는지, 몸살 감기 기운이 도는 것 처럼 다리가 아려온다. 그래도 오르고 나면 결코 후회는 하지 않기에, 목표지점까지 올라보기로 한다. 


오늘은 산에 비가 부슬부슬 살짝 내렸나 보다. 날이 살짝 흐려 산속은 좀 더 어둡다. 내 앞에 갑자기 귀신이 튀어 나오지 않을까 심장이 두근두근 하지만, 젖은 흙과 곧 파릇파릇해 질 나무에서 은은한 향이 난다. 물에 살짝 적셔져 생생한 기운을 유유히 뿜어내는 향. 

하지만 그 향에 취하기를 방해하는 냄새가 있었으니, 그렇다. 내 몸에서 나는 된장 냄새다. 무등산을 오른 지 두달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내 몸 구석구석에 아직도 된장이 발라져 있나 보다. 귀에서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두 다리는 열심히 오르는데 내 머릿속은 된장 냄새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 냄새가 땀 냄새란 말인가. 땀 냄새가 원래 이런 냄새인가. 

땀을 비 맞듯이 줄줄 흘려 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 땀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날, 여전히 산을 오르다 퍼뜩 깨달았다. 구린 땀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4번 정도 몸의 수분을 쫙 뺀 지 3달만이다.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전처럼 된장 냄새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몸의 노폐물이 쫙 빠진 것이다.


나 건강해진건가?

매거진의 이전글 걷지 않으면 커피는 마실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