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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y Nov 25. 2023

절실함을 체험시키는 경이로운 원테이크

<1917> 스포 있는 리뷰


Caution : 이 글은 결말을 포함한 스포가 담겨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드리는 스포 있는 리뷰입니다.


오늘의 추천 작품은 2020년 2월에 개봉한 <1917> 입니다.
골든글로브 작품상이자 오스카 3관왕에 빛나는 이 작품에 대해 소개해 드립니다.



1. 발단


이 영화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기간 중 1917년을 배경으로 했습니다. 


같은 전우이자 준부사관인 윌리엄 스코필드와 토마스 블레이크는 사령관으로부터 지도 한 장을 건네받고

공격 중지 명령이 담긴 편지를 데본셔 연대의 2 대대장 맥켄지 중령에게 전달하라는 임부를 부여받게 됩니다. 


블레이크는 독도법에 능한 군인이었기 때문에 사령관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이었고,

그의 형인 조셉 블레이크 중위가 데본셔 연대 2대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임무를 수행할 동기 역시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스코필드는 위험을 감수할 동기가 없었죠.

나무를 등지고 낮잠을 자다가 블레이크 손에 이끌려서 여정을 함께 하게 됩니다. 



스코필드는 명예나 사랑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이 받은 훈장을 쇳덩어리라고 표현하거나,

그것을 와인과 바꿨다고 말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반면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와 정반대입니다.

훈장을 받은 스코필드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가족들과의 애틋함도 영화에서 종종 보여줍니다.



2. 전개 그리고 위기


그런 블레이크가 죽은 이후로 스코필드의 행동과 감정이 변화합니다.

이전까지는 임무 수행에 회의적이고 별 감정이 없어 보였지만,

혼자가 된 이후부터 그는 블레이크처럼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2개 대대를 포함한 1600명 가량의 장병들이 손에 든 편지 한 장으로 생사가 갈리는 상황에서

하나뿐인 동료를 잃는다면 그 책임감은 온전히 혼자 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것이 전시 중인 상황이라면 더욱 크게 부각될 것입니다.

스코필드는 블레이크에게 내재된 가족애와 책임감을 그대로 전염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흔히 영화에서 전쟁의 참상을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생존본능을 활용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반드시 생존만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꼭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싶은 욕망도 인간의 본성임을 깨우쳐줍니다. 


"멕켄지 중령님께 무사히 도착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공개된 자리에서 명령을 전달해라.

그저 싸움을 원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 영화에서는 눈에 보이는 적을 거의 그려내지 않습니다.

오로지 편지를 제때 전달하기 위해 시간과 싸울 뿐입니다. 


전쟁 영화답게 이 작품 역시 전쟁의 야만적인 모습과 참상을 틈틈이 보여줍니다.

특히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더욱 체험하는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3. 절정


스코필드는 강에서 헤엄쳐 나온 뒤 넋이 나간 채로 나무에 기대어 한 병사의 노랫소리를 듣는데요.

이 영화의 ost인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영화 <고지전> 에서 최후의 전투를 앞둔 병사들이 슬픔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전선으로 나아가 전투를 앞둔 군인들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지 가늠하게 해 줍니다. 



스코필드는 참호 위를 뛰어올라가 병사들이 돌진하는 방향을 횡으로 헤집으며 달려갑니다.

그야말로 절실함과 참혹함을 한 장면에 모두 담아내어 표현한 것 같아 감정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4. 결말


마침내 맥켄지 중령을 찾아갔지만, 그는 스코필드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려 합니다.

유례없이 장기화되고 있는 전쟁인 데다가 작전 실행과 철수를 수없이 반복해 온 그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여겼기 때문에 취소 명령을 수용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I hope today would be a good day. Hope is a dangerous thing.
오늘은 끝날거란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위험한 거지. 



영화가 시작할 때 스코필드는 나무에 기대 잠을 자다가 블레이크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임무를 마친 스코필드가 나무에 기대어 앉으면서 막을 내립니다.

임무를 수행하기 전과 후의 스코필드의 변화를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스코필드는 영화에서 세 번 나무에 기댑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 그리고 강에서 빠진 뒤 헤엄쳐 나와 노랫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나무에 기대는 것은 그가 어떤 일을 겪기 전이나 후에 휴식을 취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장면의 감정을 환기시키기도 하고 부각하기도 합니다.



5. 외전


이 작품은 영화 전체를 하나의 롱테이크처럼 연출한 원 컨티뉴어스 쇼트 기법을 사용합니다.

이 기법의 영화들은 시간의 흐름을 관객에게 온전히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구성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면 이야기가 늘어지면서 지루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체험시키면서도 급변하는 상황들을 굉장히 몰입감 있게 구사시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은 전쟁 상황에서 한 병사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시간을 관객들에게도 경험시키기 위해 원 컨티뉴어스 쇼트 기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촬영 탓에 스코필드 역을 맡은 조지 맥케이 배우는 촬영 현장이 마치 연극 무대와도 같았다고 설명합니다.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었고, 무언가 잘못되어도 계속 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촬영 기법에 대한 놀라움을 손꼽아 말하지만,

기술력만 뛰어난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롱테이크로 쭉 이어지다가 눈에 띄게 커트가 되는 부분이 보이는데요.

바로 스코필드가 기절을 하고 난 뒤 밤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 이후로도 롱테이크로 끝까지 이어지지만 후반부부터는 전반부보다 편집점이 눈에 띄게 티가 날 정도이죠.

이런 점만 봐도 샘 멘데스 감독은 촬영 기법만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기술력보다도 이로 인해 얻어낸 효과가 더 큽니다.

인물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낱낱이 보여주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감정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관객과 같이 호흡하면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참상이 보이고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의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러모로 전쟁 영화라는 틀을 넘어서 내포된 많은 것을 전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기생충> 이라는 큰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스토리적으로나 구성으로나 먼 훗날동안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작품을 아직 못 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영화 <1917> 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 https://www.uphe.com/movies/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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