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혜진 「미애」 분석
동기들과의 독서 모임에서 김혜진 작가의 단편소설 「미애」의 발제를 맡게 되었다. 「미애」는 제목 그대로, 싱글맘 '미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혼 후, 여섯 살짜리 딸 해민을 홀로 키우게 된 미애는 친구 주희의 임대동 아파트에 머물게 된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 참가한 미애는 모임의 수장인 선우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한다. 미애는 선우가 베푸는 좋은 것들을 감사히 받으면서도 선우의 행위가 약자를 이용해 도덕적으로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근원하고 있다며 마음속으로 지적한다.
선우를 비롯한 부유하고 여유 있는 엄마들이 해민에게 끼칠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하며 희망에 부풀어 있던 미애는 생활비를 위해 대출 심사를 받던 중 언니, 엄마와의 음울한 전화 통화를 견디지 못하고 카페에서 고함을 지르고 만다. 뒤늦게 후회에 잠긴 미애는 해민과 세아가 사라졌다며 집 밖을 달려 나오는 선우와 마주친다.
독서 모임의 다른 엄마들까지 합세해 아이들을 찾게 되자, 선우는 세아의 무단 외출이 해민의 탓이라고 판단한 듯 독서 모임을 포함한 미애와의 모든 접점을 끊어버린다. 독서 모임의 세 멤버가 선우의 태도를 지적하며 모임에서 쫓아낸 사실을 알게 된 미애는 되려 선우 편을 들며 해민을 데리고 선우의 집으로 향한다. 몇 날 며칠, 문을 걸어 잠갔던 선우는 마스크를 쓰고 나와 모두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며 미애와 해민을 돌려보낸다. 미애는 그 또한 끝까지 좋은 사람인 척하고 싶은 선우의 비겁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꿰뚫고, 싱글 맘으로서 앞으로의 생활을 염려한다. 그러자, 해민은 자신이 세아와 이야기해보겠다며 미애를 위로하고 미애는 딸의 미소에서 작은 희망을 느낀다.
작품을 읽고 떠오른 이미지는 심청이를 데리고 젖동냥을 하는 심봉사의 모습이었다. 심봉사는 남자의 몸으로 젖을 먹일 수 없기에 젖동냥에 나선 것이고 미애는 '더 나은 젖'을 먹이고자 동냥에 나섰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미애가 선우의 집에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생활비 벌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 보이지만 사실상 해민과 자신의 분리를 위해 일을 나간다고도 볼 수 있다. 해민이 선우의 집에 오래 있어야 있는 자들의 '여유'를 양분 삼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민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선우네가 가진 '좋은 것'이었을까? 선우가 무단 외출 사건을 해민 탓이라 여겼을 때, 해민에게는 자신을 편 들어줄 엄마가 없었다. 미해와 해민, 선우의 관계로 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들의 관계는 결국 허망하게 청산되었다. 그러나 미애에겐 해민이 있다. 희망의 모양새를 한 해민이 있다. 심봉사가 심청의 효로 눈을 떴듯이, 초중반부까지 선우에게 눈멀었던 미애도 자신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수평-상하 관계]
'(…) 다른 사람들처럼 선우를 선우 씨라거나 세아 엄마라고는 부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선우 언니.' (p.196)
'해민, 엄마 봐. 세아랑 절대 싸우면 안 돼. 네가 언니잖아. 원래 언니가 양보하고 참는 거야.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지?' (p.197)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이었다. (…) 그러니까 그것이 자신을 그 모임에 끼워준 진짜 이유라는 것을 미애는 모르지 않았다.' (p.199)
미애는 선우와 자신을 각각 '언니'와 '동생'으로 분류한다. '언니'는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참아야 한다는 대사를 봤을 때 이러한 호칭의 초점이 자신이 받을 '수혜'와 '배려'에 맞춰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제공자'로서 선우가 가진 욕망을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소설 초반부의 ‘언니-동생’은 상하 관계보다는 서로의 득을 위한 수평 관계로 비치기도 한다.
'임대동인 주희의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외곽에 위치한 탓에 걷는다고 걸어도 계속 같은 장소만 맴돌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p.193)
그러나 소설 속엔 관계의 '수평'과 '상하'가 분명히 존재한다. 미애의 친구 주희는 이름으로만 등장하지만 소설 속 관계 분리에 기여하고 있다. 임대동 주민 주희는 미애가 자기보다 낫다고 여기지 않는 인물이다. 굳이 '친구'라고 정의한 것도 '언니-동생' 같은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임을 명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세아가 잘 이야기하겠지? 아줌마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
아닐 거야. 그래도 네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건 아니야.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지?' (p.213)
'해민이가 워낙 조심성이 없고 왈가닥이잖아요. (…) 사실 해민이 가졌을 때 태교를 거의 못 했거든요. (…) 그래서 그런가, 해민이가 좀 산만하긴 해요.' (p.216)
무단 외출 사건을 기점으로 양보하고 참는 쪽은 미애가 된다. 해민이 세아에게 나쁜 영향을 줬다는 선우의 판단 때문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그들의 관계는 본래 불공평했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알아볼 때마다 조금씩 바뀌고, 한 번 들어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아동수당과 자립수당. 주거급여와 행복주택, 뉴딜 일자리와 공공 근로 같은 여러 정책의 세부를 두루 알고 있는 선우 부부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p.198)
설령 미애가 선우와의 관계를 휘두를 수 있을 만큼 영악했다 하더라고, 미애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보를 많이 보유한 선우는 한 수 위의 사람일 수밖에 없다. 미애는 4명의 엄마 중 선우를 택한 것이지만 선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약자 중 하나를 새로 고르면 그만이다. 부유층은 희소하고, 사회적 약자의 수는 방대하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싶었고, (…) 그날 선우는 기다렸다는 듯 마스크를 쓴 채 문밖으로 나왔다.' (p.217)
이 장면에서는 '마주 보다'와 '마스크를 쓰다'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마주 본다는 것은 눈높이가 같은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으로, 이미 상하 관계가 명백해진 미애와 선우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선우가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것은 얼굴을 가림으로써 '본심을 감춘다'는 의미로도 읽히지만 선우와 동등하기를 바라는 미애의 마음을 단호하게 내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냥, 미애]
'김혜진의 「미애」에는 자신의 선의와 타인의 처지를 교환함으로써 어떤 욕망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임대동과 분양동이 나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위계적 구별 짓기를 시도하는 아파트 단지의 독서 모임 엄마들과 그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어떤 이익(그러나 잉여가치가 아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을 얻으려는 미애가 그들이다.' (p.223)
선우은실 평론가는 「미애」에 대한 해설글 「호혜 거래」에서 제목이 타인과의 관계로 욕망을 실현하려는 '미애들'을 나타내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해민 엄마, 아니, 미애 씨.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p.214)
'미애 씨. 아니, 해민 엄마. 생각을 해봐요. 세아 엄마가.' (p.215)
나는 작중 미애의 호칭, '동생, 해민 엄마, 미애 씨'와 제목인 「미애」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보았다. 미애는 독서 모임 엄마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호칭을 얻었다. 이것은 미애 스스로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물며 미애는 해민의 엄마도 '나'가 아닌 선우나 다른 부유한 엄마였으면 한다. 그러나 미애의 바람과 잠깐 동안의 실현이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다.
제목이 그냥 '미애'인 것은 타인의 부름(영향)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미애에게 한 마디 하는 것으로 보인다.
‘너는 그냥, 미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