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눈, 두 개의 팔, 두 개의 다리.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한 쌍.
그것들이 하나의 목표점을 꿋꿋이 가리켜도 하나뿐이라 그런지 보완해 줄 이 없는 뇌가 비이성에 휩쓸렸다.
잠시 딴 길로 새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이성적이다라고 여겨지는 그 행동은 통찰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본래의 이성과는 전혀 동떨어진 개념이라 생각한다. 감성과 본능에 상반되는 게 이성이라고? 지성이 순수한 본능을 통제하려 발악하여 생기는 갈림기에 선 상태에서 자신을 사회에 통용되는 관념에 초점을 맞춰 행동하는 것을 편하게끔 이성이라 불러대는 거겠지. 사회라는 기틀의 유무와 필요성에 따라 짐승과 로봇을 오가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어찌 되었던 위의 비이성적이라는 단어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서 벗어나버린 나의 유약함을 축약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되어준다.
직관적인 것들은 최대한 단순하게 바라보며 한 번에 하나씩.
두통이 이는 것들에 대부분 적용되는 공식과도 같은 행동방침이 비틀댄다.
이미 여러 것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두 손으로 목을 졸라댄다 당연하지만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지 않아 컥컥대며 질식하겠지만 결국 목을 내 생각보다 꽉 조르지 않으면 천천히 탈선한다. 진퇴양난처럼 보이지만 실은 삼면초가. 어느 순간에도 해답에 가까운 선택지는 존재하지만 난 그 단 하나의 면으로 향하는 방향을 쉽사리 잡아내지 못한다. 숨이 드나드는 길이 하나이듯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도 하나뿐이잖아.
눈은 두 개지만 초점은 하나. 다리는 두 개지만 나아갈 방향은 하나. 손은 두 개지만 오른손은 하나.
그러한 사실을 읊으며 앞만 바라보려 애써도 걸어온 곳에 어지럽게도 널려있는 놓쳐온 순간들이 발치에 채이며 두 망막을 관통하기에 이르러 끝끝내 놓쳤다 생각하는 보상을 받아내고자 한다.
그런 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다. 지나간 시간만이 알게 모르게 내 뿌리를 썩힐 뿐이다. 왜 모르는 척을 할까.
서서히 열두시로 좁혀오는 뾰족한 삼 형제 침. 그중에서 난 언제나 두 가지의 시, 분침만 신경 써왔다. 제일 중요한 것이 저 빨간색 초침임에도 내 기만적인 눈은 당장 흘러가지 않는 시간만 바라본다.
냉랭하고 견고한 세상은 그러함을 결코 용납하지 않음에도.
습관형성, 자기관리, 집중치료, 마인드개선, 목표노트, 현실직시, 관계교류,,,,,,
두 개의 다리로 아무리 높이 뛰어도, 두 개의 손으로 아무리 하늘을 휘저어도, 두 개의 눈에 아무리 담아보려 애써도 별자리처럼 어지럽고 아름답게 널려있는 양식들은 바로 한 발자국 앞의 길도 의심하려드는 나에게 쉽사리 배어들지 않았다.
좋은 몸가짐들을 끝끝내 모두 먹어치우려면 거부하지 못할 규칙을 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에 따라오는 건 쓸데없는 상상.
나의 눈이 하나였다면, 나의 손이 하나였다면, 나의 의지가 하나였다면 나는 한 점에 집중할 수 있었는가?
성별이 하나였다면, 종이 하나였다면, 의식이 하나였다면, 이념이 하나였다면 세상은 좀 더 따듯했는가?
왜 사람의 몸은 왼쪽과 오른쪽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을까? 각자를 보완하기 위하여서일까?
음. 꼬리를 무는 상상으로 해마를 녹이면 다시 몸이 하나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두 가지 것들이 겨우 한 점으로 향한다.
이런 즐거운 수렁에 또다시 빠지고 싶지 않다면 난 룰에 좀 사로잡힐 필요가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