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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Dec 05. 2023

1930 여성기억
데파트걸, 엘레베타걸

근대여성풍경


   12월이 되니 백화점 외벽에 화려하고 환상적인 미디어 파사드가 한창이다. 차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의 눈이 반짝반짝한 영상에 머물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은 영상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는다. 화려한 영상 뒤의 건물에는 세상의 모든 물건이 전시되어 있는 백화점 영업이 한창이다. 백화점은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을 자극하는 욕망과 소비의 공간이다.      

 

   1930년대 전후 백화점이 생기면서 백화점은 조선 사람들의 소비문화에 큰 변화와 충격을 가져왔다. 조그만 잡화점으로 시작했다가 일본 미츠코시 경성지점으로 승격되었던 현재 명동 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이었던 미츠코시 백화점은 온갖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장소였다. 이어 1931년 우리나라 자본의 화신상회(화신 백화점) 등이 개점하면서 백화점 판매원인 ‘데파트걸’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표적인 근대식 백화점이었던 미츠코시 백화점은 지상 4층, 지하 1층의 건물에 종업원 300명 이상의 대형 백화점이었다고 한다.     


    

미쓰코시 백화점

 

  이 백화점에는 물건의 판매를 담당하는 ‘데파트걸’과 엘리베이터 운행을 담당하는 ‘엘레베타걸’ 등이 여성의 신종 직업군으로 등장하였다. 근대 자본주의 소비문명의 핵심공간인 백화점에서 일하는 ‘데파트 걸’은 최고의 상품을 다루는 화려한 직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주목받는 직업이었다. 비교적 고학력의 여성들이 엄격한 채용시험을 거쳐 채용되었고 경쟁률도 상당히 높은 직업이 바로 데파트 걸이었다.     

 

  이들은 보통학교를 마치고 또다시 고등보통학교 혹은 상업학교에서 전문기술을 배운 후 치열한 채용시험의 경쟁을 거쳐 채용되었다고 한다. 노동조건은 평균 하루 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14시간이었으며, 임금은 20-30원 수준이었다. 화신백화점의 경우 종업원이 200명이었는데,  1년에 1회 정규 시험을 거쳐 20명 정도의 점원을 채용하였고 2개월간의 실습을 거치도록 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고객에게 하루 종일 웃음을 띠고 친절을 다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욕이고, 부모의 손에 이끌려 비싼 물건을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는 판매서비스직 여성으로서의 애환은 당시에도 여전하였다.  ‘상품과 애교’를 함께 팔아야 한다는 고백처럼 거리에 나선 데파트 걸 여성들은 고객들의 성희롱에 노출되어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 조선일보, 1931.10.11.)  당시 백화점 지배인의 증언에 의하면 데파트걸들은 3,4년간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하여 결혼을 준비하는 이가 대부분이었으며, 간혹 체험을 쌓은 후 독립하여 장사 할 생각을 가진 이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여성』 1937.월호. , pp.23-24.)   

  


   백화점에  등장한 또 다른 서비스직 여성군으로 엘레베타 걸이 있었다. 300명 지원자 중에 10명을 뽑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엘레베타 걸이 된 한 여성은 자신의 일에 대해 “처음에는 아찔하고 통에 갇힌 것 같아 고통스러웠으나 10일 정도 지나 익숙해져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출근은 오전 8시, 퇴근 5시인데 때로는 밤 10시까지도 일하게 되고 1시간마다 교대하는 일”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손님의 말도 안 들리고 층수를 실수했지만 이제는 기계같이 정확하게 일하게 되었다고 하며 일급은 70전이라고 한다.  (『여성』 1933. 12. pp.62-63.)

 

    또 다른 엘레베타 걸은 자신의 일에 대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문을 잡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야 일급 40전이라고 호소” 하면서 자신의 유일한 목적은 주인의 눈에 들어 여점원으로 승격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수입은 1개월에 1회 휴가와 평균 20원으로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의복과 신발값은 나오며, 지출은 전차비 2원, 용돈 3-4원을 쓰고 나머지는 아껴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있다고 한다. ( 『여성』1938.7. p.84. ) 그런데 함께 일하는 두 친구는 기생권번 출신이라고 밝혀 서비스직 여성들의 이동경로를 짐작하게 해 준다.   


    

엘레베타걸

  

  백화점에서 판매 서비스를 담당하는 여성들의 고충은 크게 감정적으로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감정노동의 문제와  노동과정에서 일상화된 성희롱의 문제였다. 한 데파트걸은 자신의 일에 대해 “하루에 8,9시간씩 서있어야 하는 직업으로... 처음에는 다리가 막대기가 되는 듯싶었다고” 육체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어떠한 무리한 주문이라도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이 나의 본업이나 한 시간씩 허비하고도.. 그냥 돌아가실 때에는” 기막힌 생각이 든다고 한다.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는 고객을 응대하는 것의 설움에 더해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들과 같이 와서 물건을 살 때는 부럽기만 하고 감독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은 서러움만 더하게’ 된다고 한탄한다.( 동아일보, 1936.1.6.)  백화점의 엘레베타걸은 자신의 직업의 어려움에 대해 무엇보다도 ”짖꿎은 사내들이 탄 엘레베타가 중간에 2-3초 서면 세상이 아득하고, 손님이 없을 때는 장난꾼이 일부러 타서 희롱을 일삼는데 떠들 수도 없고 참으면 더 심하게 구는“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한다.  (『여성』1938.7. p.84.)       

  

  100년전 여성들도 요즈음 우리가 ’감정노동(emotional work)’이라고 개념화하며 그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많은 판매서비스직 여성들의 목소리와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취업 여성들이 성애화의 대상으로 일상적인 성희롱에 노출되어 힘들어 했던 긴 긴 역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보려고 한다.       


“ 신여성의 행진곡, 데파트걸의 비애 : 점두의 능라주사가 그의 것 아니고 남의 살림에 애교와 상품을 팔아” 

  조선일보 1931.10.11 

“신여성 재음미” 『여성』 1937.6월호. , pp.23-24.     

“ 제1선상의 신여성”, 『여성』 1933. 12. pp.62-63.  

“ 직장여성의 항의서”, 『여성』1938.7. p.84. 

“ 한시간씩 응대하자 안사면 울고 싶어: 색다른 직업 여성과 그들이 본 세상” 동아일보, 19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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