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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Jul 10. 2023

7. 내 마음 솔직하게 말하기



December 17, 2022 기록


솔직하게 말하기

"아빠와 마트에 갔다와줘."



토요일 오전,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서 장보고 올 동안 나는 집안 정리를 계획했다. 우리 아이들은 토요일마다 10분 동안 보고 싶은 영상을 보는데, 로기가 영상 보고 마트 다녀오기 약속을 하고서는 막상 영상을 다 보니 마트에 가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괜히 내가 약속을 안지키는 탓을 하며 "아까 엄마랑 종이접기 동영상 찍는다고 했어." 라는 억지논리를 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주말에 팽이 돌리는 영상을 유튜브처럼 찍어준다고 약속했으니. 그런데 그게 꼭 자기가 불리할 때, 하기 싫은걸 안할 이유를 만들 때 들이미는 카드라서 납득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얘를 아빠 따라 보내야 나도 집정리할 겸 쉴 수 있을 것 같으니 똑같이 좀 유치한 논리를 폈다. 


"영상 보고 아빠랑 마트 다녀오기로 했잖아. 로기가 약속 안지키면 엄마도 약속 지킬 수 없어."


라고 말했지만, 아주 날것 그대로 솔직히 얘기하면, '너가 내가 하라는대로 안하면 나도 너가 해달라는거 안해줄거야' 였다. 모양새만 침착하고 차분할 뿐, 말의 알맹이는 유치찬란 그 자체였다.


"그래 안가고 싶으면 안가도 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랬다가 진짜 안가기라도 하면 내 소중한 혼자만의 시간을 날려버리는거라 어떻게든 보내고 싶었다. (결국은 집정리에 대부분을 써버린 1시간이었지만) 자유에 눈이 멀어 좀 많이 유치해진 것이다. 뭐든 심한 결핍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법이다. 필사적으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빠와 아이들이 외출하는 시간. 한 명이라도 떨궈놓고 가면 진정한 자유시간이 아니니 말이다.


더 웃긴건, 어쨋든 아이는 결국 안가고 싶어서 안가겠다고 했는데 미련을 못버린 엄마는 


"그래? 알았어. 그럼 이제부터 엄마도 너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없어. 엄마는 요즘 부쩍 종이접기가 재미있어졌는데, 이제 너와는 못접겠다. 팽이 돌리는 동영상도 안찍어도 돼?" 


하면서 유치의 정점을 찍었다. 아오. 부끄러워라. 가기 싫다는데.... 안가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이 엄마는 그깟 자유시간이 고파서 어린아이같은 대응을 했다. 결국, 좀 더 생각하던 아이는 따라나서겠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건지. 왜 그렇게 어른답지 못했는지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고 후회가 밀려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데려다주면서 은우에게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로기야, 억지로 아빠 따라 마트에 가라고 해서 미안해. 그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는 너와 약속한, 너가 좋아하는 팽이 돌리는 영상을 얼른 찍어주기 위해서 너가 마트에 간 동안 집정리를 하려고 한거야. 너가 아빠랑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오는 동안 엄마가 집정리를 하면 조금 더 빨리 팽이 영상을 찍을 수 있잖아. 엄마가 좀 쉬기도 하고, 그럼 오후에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어. 그랬던 엄마의 마음이 로기에게 마트에 가라고 강요한 것 같아 미안해. 엄마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아빠와 마트에 다녀와줄 수 있어?"


"응" 하고 단번에 수긍한 후 차에 올라타는 아이. 그냥 솔직하게 말할껄. 이제 이렇게 얘기해도 다 알아듣는 아이인데. 너가 안지키면 나도 약속 안지켜 들먹이면서, 왜 내 마음을 숨기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화해의 아이스크림


마트에 간 사이 집을 말끔히 정리했고,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왔다. 로기는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고, 나에게 좀 미안했는지 방긋 웃으며 "엄마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왔어." 하며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추운 겨울, 따뜻한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으며 그렇게 우리는 화해했다. 더 크게 휘몰아칠 뻔한 바람을 막았다며 안심하고는 : ) 








그리고 아주 즐겁게, 기꺼이, 약속했던 팽이 돌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주었다. 


나에게 여유가 없으면 아이를 내 마음대로 닦달하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번뜩 차리게 되었다. 말로는 아이가 하고픈대로, 아이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해주자고 하지만, 내 마음과 체력에 여유가 없다면 그게 안될 것 같다. 오늘의 짧은 에피소드 덕분에 나는 또 성장한다. 부딪치고 경험하고 후회하고 이불킥하며 성장하는 나란 엄마. 


오늘의 배움 요약

1. 내 마음을 솔직하고 편하게 표현하기

2. 아이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하기 싫은것 하라고 하지 않기

3. 여유 가지기(=혼자만의 시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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